신인도 타격…후순위채 발행도 쉽지않아


중소기업과 가계에 돈을 풀라는 정부의 압박 속에 시중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10%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우량은행의 판단기준이 되는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할 경우 예금주들의 불안심리를 자극,은행의 신인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구조조정과 경영개입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3분기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은행의 자본건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9월 말 자기자본비율이 6월 말 12.45%에서 9.76%로 떨어졌다. 지주사 전환시 일시적으로 보유하게 된 자사주의 영향 때문이지만 은행 이미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상반기 자기자본 비율이 10.08%에 그쳤던 하나은행은 3분기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추가 하락이 예상됐으나 분기 마지막 달인 9월 3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일단 두 자릿수는 지켰다.

우리은행의 경우 상반기 10.39%를 기록했으나 파생상품 손실과 기업대출의 부실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신한은행의 경우 11.9%로 그나마 유일하게 안정적인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금융권에서는 특히 은행들의 자기자본 중 기본자본(Tier 1)비율이 큰 폭으로 하락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은행의 경우 기본자본이 6%대로 추락하면서 보완자본(Tier 2)에 해당되는 후순위채 등의 추가발행을 통해 BIS 비율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지만 시장여건상 후순위채 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사실상 부채인 후순위채는 이자부담도 크고 만기가 돌아오면 상환해야 해 자본이 줄어들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산업은행을 통해 BIS 비율이 10% 밑으로 떨어진 시중은행의 후순위채를 매입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각 은행들도 부실채권 매각과 배당 줄이기,기업 한도거래 여신의 축소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A은행 관계자는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0%는 돼야 우량은행으로 인식되고 금감원의 은행 평가지표(CAMEL)에서도 1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1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며 "일단 보완자본을 확충해서라도 두 자릿수는 무조건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하려면 대출 축소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민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71조585억원으로 한 달 전에 비해 634억원 줄어드는 등 대출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하나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 역시 전달보다 줄었다.

그러나 금융감독당국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고 주택담보대출 만기 연장을 강력히 유도하는 등 "돈을 풀라"고 요구해 은행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이번 주 내에 정부의 대외채무 지급보증을 받는 18개 은행과 MOU(양해각서)를 맺어 중기대출 만기연장과 서민가계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등 강력히 압박하고 있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자기자본비율은 은행의 생사를 좌우하면서 무소불위의 칼날로 작용했다"며 "정부가 아무리 압박해도자자기자본비율 두 자릿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