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40% 이상의 매출 신장세는 요즘 같은 불황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실적이죠."

국내 '시계 열풍'에 백화점 바이어들마저 혀를 내두른다. 소비위축으로 백화점마저 매출 부진으로 울상인데 유독 시계만은 '나홀로 호황'이다. 해외 브랜드들이 국내에 쏟아져 들어와 수억원대 명품시계부터 10만원 안팎의 패션시계까지 선택 폭도 무궁무진하다. 패션에 눈을 뜬 남성들이 정장 구입에는 인색해도 시계만큼은 꼭 '나만의 브랜드'를 찾는 게 요즘 추세인 것이다.

◆남성들 시계로 패션에 눈떴다

남성들은 단색 일변도의 정장으로는 차별화가 어렵지만 셔츠 소매 끝에 보일듯말듯 한 시계는 자신의 패션 수준을 보여주는 필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20~30대는 엠포리오아르마니ㆍ마이클코어스ㆍCK 같은 패션시계에,40~50대 성공한 남성들은 브레게ㆍ블랑팡ㆍ바쉐론콘스탄틴ㆍ오데마피게ㆍ파텍필립 등 '위버럭셔리'(초특급 명품) 명품시계에 주목하는 이유다.

시계 열풍에 힘입어 지난 1~10월 현대백화점의 시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0% 급증했고,신세계백화점도 45% 늘었다. 1000만원대 이상 고가 시계만 모아놓은 롯데 에비뉴엘 2층 시계전문매장도 60% 급증했다. 이에 따라 현대백화점은 최근 무역센터점과 목동점에 에르메스ㆍ태그호이어ㆍ브라이틀링을,천호점에는 론진ㆍ라도를 새로 입점시켰다. 남성 직장인들이 준명품급 시계를 3~4개씩 갖고 싶어하는 수요를 반영한 것이다.

◆명품시계 붐은 이제 시작

전문가들은 국내 시계 열풍이 이제 시작단계로 보고 있다. 이미 홍콩 일본 대만을 거쳐 중국보다도 뒤늦게 바람이 분 것이다.

최정규 현대백화점 명품 바이어는 "시계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고객들이 많아 갈수록 희귀한 명품시계를 찾는다"고 말했다. 롯데 에비뉴엘 관계자는 "제품당 한두 개씩만 들여오는 명품시계를 먼저 사려는 고객들 간 경쟁이 치열하고 몇 달씩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17개 시계 브랜드를 판매하는 스와치그룹코리아에서도 가장 고가인 '브레게'와 '블랑팡'의 올 1~10월 매출 증가율이 100~200%로 가장 높다.

해외 명품시계 업계에선 한국의 시장규모가 소득수준이 엇비슷한 대만의 5분의 1에 불과해 성장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유명 시계 브랜드 CEO(최고경영자)들이 속속 방한,공격적인 마케팅을 펴고 있다. 지난 7월 '태그호이어'의 장 크리스토퍼 바빈 회장에 이어 지난달에는 '까르띠에'의 버나드 포나스 회장,'위블로'의 장 클로드 비버 회장,'오데마피게'의 조르지오 헨리 메이란 회장 등이 무더기로 다녀가 한국시장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줬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