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영화名']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전쟁통 두 소년고아, 처절한 생존 투쟁기
전쟁이 끝난 1953년,서울 거리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헐벗고 굶주린 이들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기 때문이다. 가족 생계를 책임진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고,전쟁 고아들도 살벌한 전장으로 내몰렸다.

배형준 감독의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격동기를 살아가는 두 소년의 생존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묵직한 내용을 담은 한 시대의 초상이자 청소년들에게 인생 좌표를 제시하는 성장스토리이기도 하다.

폐허의 거리에서 만난 소년 태호(송창의)와 종두(이완)는 우여곡절 끝에 미군부대에서 상품을 빼돌리는 밀수 조직의 말단 심부름꾼이 된다. 셈에 밝은 태호는 미국산 상품의 물량이 달리는 상황을 이용해 정가보다 더 받는 방식으로 돈을 모은다. 이후 돈 가치는 떨어지고 상품 값이 치솟자 고아들을 규합해 돈을 쌀로 바꾼다. 이 사실을 눈치챈 밀수꾼들은 소년들의 돈을 빼앗으려 시도한다.

전쟁 직후의 갖가지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총과 포탄으로 팔·다리를 잃은 상이용사,육신은 멀쩡하지만 정신적인 상처로 술에 의지해 사는 참전용사,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모으려는 야바위꾼들은 어디까지나 주변 인물이다. '전쟁을 겪은 소년들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란 경구를 일깨워주는 영악한 고아 소년·소녀들이 주인공이다. 무조건 많이 갖는 것이 삶의 목표인 태호,법과 질서가 무너진 세상에선 힘만이 권력이라고 믿는 종두,살아남기 위해 소년행세를 하는 소녀 순남(박그리나) 등이 그들.

이성적인 태호와 감성적인 종두의 이율배반적인 속성과 그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한 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는 인간에 대한 사랑임을 설득력 있게 가르쳐 준다.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충돌이 탁월한 드라마로 승화됐다. 시장판 싸움 장면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재미를 더한다. 소년들이 사력을 다해 어른들에게 덤비지만 힘에 부치는 대목에선 세상의 약자로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연상된다.

전쟁을 체험한 세대는 물론이고 아버지와 할아버지 시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전후 세대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한국 작가가 아니라 일본 작가 기타가타 겐조의 '상흔'을 원작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랍고도 부끄럽게 만든다. 15세 이상 관람가.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