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티 급등에 해외도서 계약 기피

베스트셀러도 국내서적 대거 랭크

"환율 급등으로 해외 저작권료가 치솟는 바람에 외서 계약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환율 상승 이전에 잡아뒀던 책들도 다 취소했죠.제작비 상승에 로열티 부담까지 눈덩이처럼 커지니 죽을 맛입니다. 그래서 비싼 로열티를 주는 대신 국내 저자를 발굴하는 데 주력하기로 방향을 틀었지요. "(중견 출판사 대표 A씨)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계가 환율 폭탄을 피해 국내 저자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달러나 엔화 기준으로 이뤄지는 해외 로열티 부담이 예전에 비해 30~50%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주연선 은행나무 출판사 대표는 "그동안 한 달에 한 권 이상 일본 책을 계약했는데 최근엔 아예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면서 "편집회의 때 외서 비중을 낮추고 국내 필자 개발에 박차를 가하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성의현 미래의창 출판사 대표도 "해외 번역서는 당장의 로열티도 문제지만 5년 뒤 재계약할 때 인상된 금액까지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크다"며 "국내 저자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출판사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번역서 비중이 큰 회사들은 해외 인세 지급 기한을 최대한 늦추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는 저작권 중개 현황으로도 확인된다. 해외 도서 저작권 중개를 맡고 있는 엔터스코리아의 양원곤 대표는 "지난 7월부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40% 줄었다"며 "그나마 계약한 책도 출판사에서 계약금을 지급하지 못하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또 "중개수수료를 정산한 후 외국으로 돈을 보내야 하는데 계약 건수의 70~80%가 지불을 연기해 해외 송금미수가 몇 억원이나 쌓였다"면서 "이렇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계약 취소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번역물량까지 30% 이상 감소해 더욱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폐막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도 파울로 코엘료와 폴 크루그먼 등의 빅타이틀이 5개 정도 있었으나 국내 출판사 간 경쟁이 예전 같지 않았다.

서점가에서도 번역서가 크게 줄고 국내 저작물이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들어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1,2》를 펴낸 박경철씨와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를 쓴 유수연씨 등 경제경영·자기계발 저자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형서점의 종합베스트셀러 1~10위 가운데 7권이 국내 저작물이다.

문제는 당장 활용할 만한 국내 저자층이 두텁지 않고 축적된 콘텐츠도 적다는 것.일본의 경우 국내 저작물 비중이 70%에 육박하지만 우리나라는 40% 이하다. 그만큼 외서 의존이 심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입체적인 기획력과 안목을 겸비한 편집·기획자들이 드물다는 점도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김중현 지식노마드 대표는 "그동안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응하느라 해외 흐름에 주목했다면 이젠 우리의 내재가치를 발견하고 활용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며 "문학을 제외한 국내서 기획에서 다양한 분야의 융합·복합화 전략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문적인 지식과 안목을 대중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과 거기에 필요한 편집·기획력을 강화해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하는 방안까지 모색해야 할 때"라면서 "1980년대에 축적된 힘을 새로운 문화의 꽃으로 피워낸 영화 분야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얘기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