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1년만에 1억원→2500만원, 원금 다 까먹은 '마이너스 펀드'도

역외펀드가 주가 급락에다 판매회사의 잘못된 환헤지로 이중으로 손실이 발생해 위기를 맞고 있다.

평균 주가하락률이 50%를 웃도는 상태에서 과잉 환헤지에 따른 손실이 이중으로 발생해 원금을 전부 까먹은 깡통펀드마저 나타나고 있다. 역외펀드는 전 세계 증시가 한창 뜨거웠던 지난해 10월을 전후해 집중적으로 판매돼 환헤지용 선물환거래 1년 만기가 돌아온 지금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불완전 판매 논란이 뜨겁고 법정공방도 불가피할 전망이어서 '펀드업계의 키코사태'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깡통펀드 속출 우려

환헤지 손실을 감안할 경우 역외펀드들의 원금보전 비율은 이미 10~20%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한 투자자는 작년 10월 모 은행에서 '피델리티차이나포커스펀드'에 2000만원어치를 가입한 뒤 1년 만인 최근 펀드를 해지하면서 겨우 275만원을 손에 쥐었다. 펀드수익률은 -55% 정도였지만 가입 당시 900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1300~1400원을 오르내리며 대규모 환헤지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역외펀드 관련 소송을 준비 중인 인터넷 카페의 한 관계자는 "피해사례를 접수한 결과 총 6억8000만원어치를 역외펀드에 넣은 투자자들의 손실이 5억원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환헤지 손실은 국내 펀드운용회사가 자산변화에 맞춰 환헤지를 하는 해외 투자펀드와 달리 역외펀드는 판매회사가 일률적으로 자산의 100%만큼을 과대하게 환헤지를 한 데서 비롯됐다. 해외펀드는 운용을 맡은 펀드매니저가 직접 환율 변동에 맞춰 환헤지 규모를 조절할 수 있지만 역외펀드는 운용회사가 외국에 있기 때문에 판매사가 대신 헤지를 해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 1억원의 역외펀드에 가입한 경우 판매사는 이를 달러선물환 매도를 통해 헤지를 했지만 달러 가치가 50% 상승해 5000만원(50%)의 손실을 입게 된다. 이 손실은 보유 중인 달러자산(현물주식)의 가치 상승으로 상쇄돼야 한다. 달러 기준 주식가치가 1억원이라면 원화로 바꿀 때 1억5000만원으로 교환할 수 있어 수익에 영향이 없지만 주가 급락으로 주식 값이 반토막나 5000만원으로 추락한 점이 문제다. 5000만원에 해당하는 달러자산은 원화로 7500만원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달러자산에서 이익이 나지 않고 오히려 25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를 감안할 때 원화 가치 하락률이 50%라고 가정할 경우 대략 펀드 하락률이 60%를 웃돌면 수수료와 환헤지 비용까지 감안할 때 사실상 깡통펀드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원·달러 환율이 높아질수록 손실도 커진다. 선물환 매도로 인한 손실이 급증하는 반면 펀드자산가치의 추락으로 인해 이익발생은 제한되기 때문이다.

◆불완전 판매 논란이 핵심쟁점

핵심쟁점은 불완전 판매 여부다. 키코사태처럼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 펀드를 판 금융회사들은 물론이고 금융감독원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투자자들의 민원이 급증해 역외펀드를 많이 팔았던 금융회사들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부행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책반을 구성했고,증권사들도 해결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현재 역외펀드 자산이 많은 곳은 한국씨티은행과 국민은행으로 올 9월 말 기준으로 각각 6504억원과 6203억원에 이른다. 신한은행과 외환은행이 4957억원과 4249억원으로 뒤를 잇고 있다. 증권사 중에서는 푸르덴셜투자증권이 1783억원으로 가장 많고 메릴린치(739억원) 한국투자증권(632억원) 등의 순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펀드 판매시 영업직원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가입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고 이때 반드시 전화녹음을 남기고 있어 소송에 들어갈 경우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도 "중소기업의 재무담당자들을 상대로 판매한 키코조차 불완전 판매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라 환위험에 대한 인식이 낮은 일반투자자에게 판매한 역외펀드도 불완전 판매 논란을 비껴가기 힘들 것"이라며 "이달 한달동안 실태를 점검하고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많다. 금융당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환헤지 계약 서류에 고객 서명을 받아두는 등 형식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법정에서 판매사들의 불법행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

[ 용어풀이 ]

◆역외펀드=국내 자산 운용사들이 만든 해외투자펀드와 달리 해외에서 만들어져 국내에 들여와 판매된 펀드를 말한다.

피델리티 메릴린치 등 해외업체들이 해외 유가증권에 달러나 유로 등 외화로 투자한다. 역외펀드는 펀드 내 환헤지가 불가능해 통상 선물환 계약을 체결해 환율 변동 위험을 분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