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희생하다 실종된 여인 '엄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신경숙씨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출간
엄마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가족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기로 했다. 그제서야 알게 된다. 엄마의 정확한 생년월일도 몰랐고,최근에 엄마와 사진을 찍은 적도 없다는 사실을.심지어 그들은 엄마가 극심한 두통 때문에 혼절해 있는지도 모르고,그저 아무데나 누워서 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무심했다.
소설가 신경숙씨(사진)의 신작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창비)는 나의,너의,우리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신씨는 "우리는 엄마가 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을 거쳐 나를 낳아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사실 엄마에게도 과거가 있고 비밀이 있고 꿈이 있으며 엄마도 엄마라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소설을 쓰는 동안 고해성사하는 기분이 들었다"면서 "읽고 있는 동안 엄마한테 전화 한번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소설"이라고 덧붙였다.
소설의 각 장에선 다른 화자가 나선다. 1장에서는 딸,2장에서는 아들,3장에서는 아버지,4장에서는 엄마,에필로그에서는 다시 딸이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엄마의 실종은 가족들이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을 불러들인다. 웬만한 건 다 해결했으면서도 산 닭과 붕어는 다루지 못했던 엄마,콩이나 감자 배추 등 수확해서 먹을 작물만 심을 것 같았지만 사실 장미를 좋아했던 엄마,한평생 절약하며 살았지만 남몰래 고아원을 후원했던 엄마의 모습을 가족들은 뒤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엄마의 진면목과 비밀은 엄마가 화자인 4장에서 더 확실히 드러난다.
신씨는 "소설에서 유일하게 '나'로 등장하는 인물은 엄마 뿐"이라면서 "누군가의 모친으로,아내로만 살았던 엄마에게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서 4장을 썼다"고 말했다.
엄마는 조근조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자식들을 자랑스러워하고,오래된 신작로처럼 마음 속에 깔려 있는 외간 남자를 향한 애정을 조심스럽게 고백하고,때로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일에 대해 푸념한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희생과 고난이 아로새겨진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인다. 다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네"라고 조용하게 말할 뿐이다.
소설 막바지에 큰딸은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계 자체였던 여인'인 엄마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에서 언젠가 엄마가 하나 구해달라고 했던 장미 묵주를 산다. 딸에게는 감히 따라잡을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강인한 엄마였지만,그런 엄마도 고달플 때면 묵주 기도를 의지처로 삼고 싶었나 보다. 작가는 "나를 보살펴주었던 엄마를 내가 보살펴야 하는 시기가 언젠가 오게 마련"이라면서 "독자들이 이런 '역할 교체'를 받아들이는 데 이 소설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소설 마지막장까지 엄마의 행방은 묘연하다. 아버지는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고 살았고나"라고 후회하고,딸은 여름옷을 입고 사라진 엄마를 만나면 무조건 입혀주려고 밍크코트를 들고 노숙자들 사이를 헤메다닌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엄마라는 존재를 되찾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고,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엄마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가족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기로 했다. 그제서야 알게 된다. 엄마의 정확한 생년월일도 몰랐고,최근에 엄마와 사진을 찍은 적도 없다는 사실을.심지어 그들은 엄마가 극심한 두통 때문에 혼절해 있는지도 모르고,그저 아무데나 누워서 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무심했다.
소설가 신경숙씨(사진)의 신작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창비)는 나의,너의,우리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신씨는 "우리는 엄마가 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을 거쳐 나를 낳아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사실 엄마에게도 과거가 있고 비밀이 있고 꿈이 있으며 엄마도 엄마라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소설을 쓰는 동안 고해성사하는 기분이 들었다"면서 "읽고 있는 동안 엄마한테 전화 한번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소설"이라고 덧붙였다.
소설의 각 장에선 다른 화자가 나선다. 1장에서는 딸,2장에서는 아들,3장에서는 아버지,4장에서는 엄마,에필로그에서는 다시 딸이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엄마의 실종은 가족들이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을 불러들인다. 웬만한 건 다 해결했으면서도 산 닭과 붕어는 다루지 못했던 엄마,콩이나 감자 배추 등 수확해서 먹을 작물만 심을 것 같았지만 사실 장미를 좋아했던 엄마,한평생 절약하며 살았지만 남몰래 고아원을 후원했던 엄마의 모습을 가족들은 뒤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엄마의 진면목과 비밀은 엄마가 화자인 4장에서 더 확실히 드러난다.
신씨는 "소설에서 유일하게 '나'로 등장하는 인물은 엄마 뿐"이라면서 "누군가의 모친으로,아내로만 살았던 엄마에게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서 4장을 썼다"고 말했다.
엄마는 조근조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자식들을 자랑스러워하고,오래된 신작로처럼 마음 속에 깔려 있는 외간 남자를 향한 애정을 조심스럽게 고백하고,때로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일에 대해 푸념한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희생과 고난이 아로새겨진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인다. 다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네"라고 조용하게 말할 뿐이다.
소설 막바지에 큰딸은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계 자체였던 여인'인 엄마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에서 언젠가 엄마가 하나 구해달라고 했던 장미 묵주를 산다. 딸에게는 감히 따라잡을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강인한 엄마였지만,그런 엄마도 고달플 때면 묵주 기도를 의지처로 삼고 싶었나 보다. 작가는 "나를 보살펴주었던 엄마를 내가 보살펴야 하는 시기가 언젠가 오게 마련"이라면서 "독자들이 이런 '역할 교체'를 받아들이는 데 이 소설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소설 마지막장까지 엄마의 행방은 묘연하다. 아버지는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고 살았고나"라고 후회하고,딸은 여름옷을 입고 사라진 엄마를 만나면 무조건 입혀주려고 밍크코트를 들고 노숙자들 사이를 헤메다닌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엄마라는 존재를 되찾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고,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