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後(전후) 선교활동 벌이다 돌아간 벽안의 할머니들 訪韓(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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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리워 미국서도 한글 문패 달아"
5일 오전 11시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2층 오키드룸.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미국 할머니 세 명과 역시 한복 차림의 중년 남자 한 명이 행사장 앞줄에 앉았다. 개신교 케이블·위성방송인 CTS기독교TV가 한국전을 전후해 수십년간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선교사들을 초청해 마련한 감사모임 자리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시골마을인 '블랙 마운틴'에서 여생을 보내던 이들은 100여년 전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초기 선교사들의 후손이기도 하다.
대한제국시대에 근대교육과 의료사업을 펼친 유진벨 선교사의 외손자인 휴 린튼의 부인 로이스 플라워즈 린튼(82),광주에서 태어나 전주예수병원에서 간호부장으로 일한 메리엘라 프로보스트(86),장신대 교수로 일하면서 30여년간 한국 기독교 교육의 뼈대를 세운 안네 메리 멜로즈 여사(86)는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한국을 찾았다. 또 전주예수병원에서 암 전문의로 활동한 남편과 함께 한국 최초의 기독의학연구소를 설립한 매리 실 여사(84)는 암 투병 중이라 아들 존 실 보스턴대 교수(54)가 대신 방한했다.
감사예배에 이은 축하행사에서 프로보스트 여사는 "고향이 어디세요"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나는 광주에서 태어난 광주 사람입니다"라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그는 "1910년 우리 아버지가 목포에서 배와 달구지를 갈아타며 광주까지 가서 선교했고,나는 그 후 광주에서 태어났다"며 "한국전쟁 때 대전에서 광주로 피란 가는 중에도 의료장비를 싣고 가 수많은 환자를 돌봤다"고 회고했다.
순천결핵재활원장을 지내며 35년간 결핵 퇴치 운동을 벌인 로이스 린튼 여사의 집안은 4대째 한국 선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진벨 선교사의 외손자인 휴 린튼이 그의 남편이고,세브란스 병원 의사인 인요한 박사는 그의 아들이다.
선교사 시절 위험과 불편을 무릅쓰고 자신을 희생했던 이들의 한국 사랑은 은퇴 후에도 여전하다. 인애자(로이스 린튼) 부마리아(메리엘라 프로보스트) 설매리(매리 실) 왕마려(안네 메리 멜로즈) 설요한(존 실) 등의 한국 이름을 갖고 있다. 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은퇴 후 모여 사는 '블랙 마운틴'에선 한글 이름 문패를 붙여놓고 쌀밥에 김치로 밥상을 차려 먹을 정도다.
존 실 교수는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선교를 위해서라기보다 이 땅이 자기 나라라고 생각해서 오래 있게 된다"며 "은퇴 후 생활시설이 한국에 있다면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당연히 친구와 추억과 정겨운 삶이 있는 한국에서 여생을 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감사모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축전을 보냈고,올해 98세의 교계 원로인 방지일 목사를 비롯 정진경 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엄신형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등 200여명이 참석해 노 선교사들의 노고와 헌신에 감사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