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5일 새로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협약인 바젤Ⅱ 시행을 2010년으로 1년 연기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은행들이 자기자본비율의 하락을 우려,중소기업 대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겠다는 취지다.
바젤Ⅱ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바젤Ⅰ과 비교해 대출의 종류별로 위험가중치를 다르게 부여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바젤Ⅰ은 모든 기업대출에 대해 위험가중치를 100% 부여하지만 바젤Ⅱ는 기업 신용도 등에 따라 0~150%까지 차등 부여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신용평가사가 판정한 기업의 신용등급이 BB- 이하의 경우 위험가중치 150%가 부여된다. 국내 대부분 중소기업의 경우 신용등급이 BB- 이하라는 점을 감안하면 바젤Ⅱ가 적용되면 중소기업 대출은 위험가중치가 150%로 매겨지게 되고,은행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중소기업 대출을 바젤Ⅰ과 비교해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젤Ⅱ는 과거에 위험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미사용 한도'에 대해서도 위험가중치를 부여,기업 관련 자산이 많은 은행일수록 자기자본 비율의 하락폭이 커진다. 특히 외환 관련 대출이나 어음할인 등이 많은 은행일수록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감독당국도 지난해 말 바젤Ⅱ의 시행으로 은행의 BIS 비율이 1~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단 은행들은 바젤Ⅱ 시행 연기로 중소기업 대출 축소의 압박을 일시적으로 덜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바젤Ⅱ 시행으로 기존 대출을 축소하거나 회수당할 처지에 놓였던 중소기업들도 한숨을 돌리고 있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이 같은 점을 감안,최근 '정기국회 법안 검토회의'에서 "제도 정비를 통해 바젤Ⅱ의 도입 시점을 1년 정도 늦추도록 해 은행들이 보다 여력을 갖고 기업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근의 경기침체는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로 전이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적절한 프로세스를 통해 가계와 기업에 자금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이 깔린 것이다.
고일용 금감원 은행팀장은 "이번 조치로 은행의 BIS 비율 하락 부담이 완화돼 중소기업 등에 여신 공급 여력이 축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은행들은 그러나 바젤Ⅱ를 기준으로 자기자본 비율을 이미 맞춰놓은 만큼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은행의 대출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바젤Ⅱ가 기본적으로 자기자본 비율을 하락시키지만 내부등급법 승인을 받을 경우 오히려 이 비율이 1%포인트 높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국민,우리,하나은행 등은 이미 내부등급법 승인을 받았거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금융당국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바젤Ⅰ 기준으로 회귀해 적극적으로 대출을 늘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자칫 중기대출을 늘렸다가 바젤Ⅱ의 시행을 앞두고 내년 하반기에 자기자본 비율을 관리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박준동/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