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소비가 꽁꽁 얼어붙었다. 기획재정부가 10월 신용카드 승인액,백화점 및 할인점 매출,국산 자동차 및 휘발유 판매량 등 소비 관련 속보지표들을 모아본 결과 소비 부진 추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경기 전망이 좋지 않아 소비 심리가 얼어붙는 단계를 넘어 고용 부진과 자산 가격 하락,이자율 상승 등이 겹치면서 소비 여력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정부는 6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 보고서(그린북)에서 "10월 소비재 판매는 속보지표와 소비 심리 등을 감안할 때 부진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아직 10월 소비재판매지수가 발표되지 않았지만(11월28일 예상) 9월에 전년 동월 대비 ―2%로 마이너스 신장세를 보인 것에 이어 소비 부진의 골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란 얘기다.
재정부가 집계한 속보지표에 따르면 10월 신용카드 국내 승인액은 전년 동월 대비 15.2% 증가해 전달(21%)에 비해 증가세가 5.8%포인트 둔화됐다. 소비자들이 점점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쓰는 경우가 늘면서 소비가 둔화된 상황에서도 신용카드 승인액은 전년 동기 대비 20% 안팎의 신장세를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신장세가 크게 꺾인 것이다.
백화점 매출도 전달(―0.3%)에 이어 또다시 뒷걸음질(―0.3%)쳤고,국산 자동차 내수 판매량은 자동차업체 파업 등으로 인한 공급 차질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는데도 불구하고 ―0.1%로 역신장을 면치 못했다. 휘발유 판매량 역시 전년 동월 대비 ―11.5%로 전달(―0.7%)보다 매출 감소폭이 훨씬 커졌다. 다만 할인점은 중저가 상품 위주로 소비 패턴을 바꾼 고객 덕분에 매출이 3.2% 늘었다.
재정부는 그린북에서 소비 침체의 원인을 "고용 악화와 자산 가치의 하락이 지속되면서 가계의 소득 증가가 부진"한 데서 찾았다. 지난 9월 신규 취업자 수는 11만2000명에 그쳐 10만명 선도 위험한 상황이다. 집값은 오르지 않는데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는 지속적으로 올라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소비 위축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소비 부진 속에 기업 투자도 얼어붙고 있어 내수 부문의 경기 하강 충격이 예상보다 더 클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3분기 설비투자(GDP 속보치 기준)가 전년 동기 대비 4.9% 증가에 그친 데 이어 10월에도 선행지표인 기계수주 흐름과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등을 감안할 때 개선이 어려울 전망이다.
송준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가계의 소득 대비 지출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이제는 단순히 심리적 위축으로 지갑을 닫는 단계를 넘어 지갑 속에 쓸 돈이 점점 고갈돼 가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고소득층까지 소비 심리가 악화된 상태여서 당분간 소비 부진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