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우연과 광기의 산물이라던가.

그러나 들여다 보면 우연은 놀라운 집중과 끈기의 소산인 수가 대부분이고,광기는 쓰라린 상처에서 비롯되는 수가 많다. 이 세상 수많은 위대한 저술이 현실에서 실패하고 어둠 속에 살다간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상처는 고통스럽다.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에 생긴 상처는 더하다. 게다가 아문 듯했다가도 수시로 도져 가슴을 후벼판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만든 상처도 견디기 힘든데 하물며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얻은 상처임에랴.태생과 가족사처럼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일생을 괴롭히기도 한다.

상처는 열등감이 되고 열등감은 수치심과 좌절을 부른다. 잊거나 헤어나오지 못하면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마저 잃고 무너지기 십상이다. 자포자기하거나 복수심에 불타다 급기야 파멸로 치닫는 일도 있다. 그러나 상처로 인한 아픔과 콤플렉스를 세상과 맞서는 강인한 힘으로 바꿈으로써 자신을 우뚝 세운 경우도 적지 않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유복자로 태어나 알코올 중독자인 의붓아버지에게 구박받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이거니와 버락 오바마 당선인 역시 두 살 때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이해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흑백을 아우르는 정치가로서의 꿈을 키웠다는 마당이다.

소년 시절 그토록 미웠던 케냐인 아버지가 실은 꿈을 향해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집념을 발휘한 인물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종족간 싸움으로 능력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스러졌단 사실을 안 뒤 상처를 닦고 자신과 아버지의 꿈을 함께 실현시키고자 더욱 실력을 쌓았다는 얘기다.

살다 보면 무시로 크고 작은 상처에 시달린다.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고 어디선가 갑자기 날아온 돌에 맞아 피를 흘린다. 원인이 뭐든 상처는 빨리 치료할수록 좋다. 분통만 터뜨리고 있어봤자 상처는 깊어지고 자칫 곪으면 치료해도 흉터가 남는다. 상처를 힘으로 쓰느냐 독으로 만드느냐는 전적으로 제 몫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