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간통죄 위헌 여부 판정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다. 대한민국에서 간통죄가 제정되고 적용돼 온 실례들을 보면 실상 간통죄는 유부녀를 위한 형벌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심지어는 '간통죄의 핵심은 유부녀를 처벌하는 데 있다'라고 합의돼 있을 정도다. 부부의 정절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간통죄 항목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여성의 욕망을 단속하고 엄벌하는 데에 실효성을 두고 있는 셈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정절이란 부부가 서로에 대해 지켜야 할 도의이며 신의이다. 앤서니 기든스와 같은 학자는 부부의 침실에 누군가 끼어드는 것을 통칭해 불륜이라고 부른다. 남편이 사창가에 가서 여자를 산 것도 불륜이고,아내 몰래 다른 애인을 두고 몇 년씩 관계를 지속했다고 해도 불륜이다. 감정의 농도와 육체적 친밀도의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을 만나 섹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륜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불륜의 개념은 좀 다르다. 우리에게 불륜은 아내나 남편이 서로를 속인 채 다른 정인을 둔다는 개념을 뜻한다. 불륜이라는 문어체보다 '바람피운다'라는 구어적 표현이 더 상용화돼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불륜 혹은 바람이라는 말과 함께 "남편의 바람은 한 번쯤 용서해 줘야지" 같은 속설이 따라 붙는다는 것이다. 남편의 바람도 형법상 간통죄로 엄벌 받아야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상 한 번의 실수로 용납된다.
또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남편들이 술집 여자 혹은 매춘부와 섹스를 나누는 것은 바람의 개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양의 경우 남편 혹은 애인이 매춘부와 섹스를 나눴다는 사실이 이혼의 중대 사유나 결별사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남자들이 성욕을 발산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관대하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배설 행위니까'라는 식의 관대한 합의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남자들의 '바람'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그럴 수 있는 상례로 굳어져 있다.
하지만 과연 간통죄의 애초 목적이 부부의 신뢰를 지켜주고 보호하는 법이었다면 이러저러한 예외 조항들이라는 것이 필요할까. 간단히 말해 우리에게 간통죄란 필요한 순간 적절하게 해석되는 이상한 법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이상함은 여성이 '간통'에 해당되는 일을 저질렀을 때만큼은 한 치의 예외도 없이 적용된다는 점에서도 발견된다. 아내들이 불륜을 저질렀을 때에는 감정없는 배설,잠깐의 일탈과 같은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엄격한 시아버지가 돼 여성의 실수를 지탄하고 나서는 것이다.
한국의 멜로 영화나 아침 드라마들은 이런 사회적 통념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가정 비극은 남편의 불륜이 낳은 씨앗에 대한 조금의 반성도 없다. 반면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와 같은 영화는 춤바람으로 압축되는 한 여성의 외도에 철저한 응징과 처벌을 제공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1960년대식의 이러한 설정이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심지어 혼외정사를 통해 아이까지 낳는다. 아내에게 이러한 사실은 단죄나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의 곤혹스러운 장면으로 대체된다. 하지만 만일 상황이 역전됐다면 어떨까. 아내가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면 말이다. 대답은 하지 않아도 알 법하다. 간통죄,그것은 여성의 욕망만을 단속하기 위한 허울 좋은 법률이다. 법으로 단속되지 않을 욕망을 법의 이름으로 단죄하는 모순,간통죄에는 가부장제로 유지돼 온 한국의 모순이 깊이 박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