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 한 제과업체가 내놓은 초콜릿과자 '빼빼로'가 숫자 11을 연상시킨다 해서 생긴 기념일 아닌 기념일이다. 이날을 앞두고 10~20대는 온통 빼빼로 구입에 매달린다.
빼빼로데이를 본뜬 짝퉁 기념일도 속속 등장했다. 한 남성 패션브랜드는 넥타이가 숫자 1처럼 길쭉하다는 점에 착안,11일을 '넥타이데이'라고 정해놓고 넥타이를 사면 덤으로 1개를 더 준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11% 할인쿠폰데이''1+1 기획전데이'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당장 11월8일은 일본 란제리업체가 만든 '브라데이'다. 11은 브래지어의 끈을,8은 눕혀보면 브래지어 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특정한 날을 기념일로 정하고 관련 상품의 판촉에 나서는 '데이 마케팅'은 '밸런타인데이'(2월14일)에서 비롯됐다. 요즘처럼 팍팍한 일상 속에 작은 활력소로 여길 만도 하다.
하지만 일본 초콜릿 업계가 마케팅 차원에서 시작한 밸런타인데이가 오히려 국내에서 더 극성인 것을 보면 곱게만 볼 수가 없다. 자의적으로 날짜를 정하고 무분별한 소비를 부추기는 얄팍한 상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 업체들은 데이 마케팅으로 매출을 올려 좋겠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중국산 저가 초콜릿이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유사품이 대량 유통되는 게 단적인 예다. 국적 불명의 빼빼로 과자를 곰인형과 묶어 4만~5만원에 파는 곳까지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저런 '데이'가 범람해도 의미있게 이어갈 만한 날도 있다. 11일은 '농업인의 날'이자 '가래떡데이'이다. 몇 해 전 안철수연구소가 빼빼로 대신 우리 것을 살리자는 뜻에서 가래떡을 나눠 먹으면서 이런 별칭이 붙었다. 이에 맞춰 농림수산식품부는 전국 주요 떡 매장들과 손잡고 가래떡을 나눠주며 쌀 소비 촉진운동을 펴고 있다.
같은 날을 기념하지만 빼빼로데이와 가래떡데이가 주는 느낌은 천양지차이다. 풍년인데도 오히려 수입이 줄어 걱정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진정성을 결코 반짝 상술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김진수 생활경제부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