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8일) 저녁 서울의 한 대학가 치킨집.손님이 소주를 주문한다. "아줌마,병 뒤에 이효리가 '10억원' 들고 있는 걸로 한 병 더 주세요. " 그는 소주를 받자마자 얼른 뚜껑을 따 속을 확인해 본다. "에이,또 꽝이네.오늘만 5병째 꽝이다. "

두산주류가 소주 '처음처럼' 판촉을 위해 지난달 15일부터 4개월간 총 10억원을 내건 병 뚜껑 경품행사를 진행 중이다. 1등 20명에게 공정거래법상 경품 최고액인 500만원씩,2등 5000명에게 5만원씩,3등 6만5000명에겐 1만원씩 총 7만20명에게 10억원을 나눠주는 대형 이벤트다. 두산주류는 유명 음식점에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를 붙이고,병 뒷면에는 모델 이효리가 '총 10억원을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들고 웃는 모습을 라벨에 담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런 초대형 경품행사를 언론에는 일절 홍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소 같으면 이보다 소소한 이벤트도 열심히 보도자료를 돌렸을 텐데 한 달 가까이 '쉬쉬'해 온 것이다. 왜 그랬는지 궁금증은 지난 주말에야 풀렸다. 두산주류는 지난 7일 이 행사를 슬그머니 중단키로 결정했다. 정부 당국이 '술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현금 경품 행사가 과다한 술 소비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자제를 요청했고,두산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두산주류 측이 이런 상황을 사전에 예상하고도 이벤트를 강행했다는 점이다. 두산주류 관계자는 "과거 경험을 비춰볼 때 이럴 소지가 있어 언론에는 (행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정부 당국의 눈치를 살피고,언론의 비난이 두렵지만 많이 팔리면 그만이란 말처럼 들린다.

두산주류는 10일부터 행사 포스터를 떼고,소주 병에도 더 이상 행사 알림 라벨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벤트 중단에 대한 사과 얘기는 아직 없다. 인터넷에는 이미 '처음처럼' 홈페이지에서 이번 이벤트가 슬쩍 내려진 것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당장 오늘도 경품을 기대하고 소주 병을 따고 있는 소비자들에겐 뭐라고 설명할까. 진짜 두려워 해야 할 대상은 정부나 언론이 아니라 소비자가 아닐까 싶다.

윤성민 생활경제부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