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수석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음반·악기 판매,관객 증가 등 클래식 열풍

동기부여·공정한 평가 등 새 리더십 제시

우리 모두 꿈꾼다.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나 소설의 모델인 화가 고갱처럼 언젠가 나만의 꿈을 찾아 훌쩍 떠날 수 있기를.그러나 꿈은 늘 꿈으로 남는다. 현실에 발목이 잡힌 채.아이들이 크면,먹고 살 만해지면,집이라도 한 칸 장만하면.그렇게 미루고 망설이는 사이 꿈은 꿈으로 사라진다.

떠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 속에서 허덕이는 동안 간절히 소망한다. 허튼 꿈 꾸지 말라고 윽박지르지 않고 다가서보라고 격려하는 사람,내 하소연과 주장에 귀 기울이고 세상은 변하니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사람,겉으론 냉정한 듯해도 남 몰래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이런 꿈과 소망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준 걸까. 국내 최초의 클래식 휴먼드라마라는 '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가 장안의 화제다. 배경음악을 담은 음반은 불티나고,음악학원 등록자는 늘고,악기 판매 또한 급증한다는 마당이다. 불륜도,출생의 비밀도,복수극도 없는 드라마가 대박을 터뜨린 이유는?

분석은 많다. 없어진 줄 알았던 가슴 속 꿈 한자락을 일깨워줬다,실패할 게 뻔한 꿈일지언정 매달림으로써 삶을 변화시키는 이들의 모습이 아름답다,하나같이 착한 사람들의 웃음과 정이 전염된다 등.그러나 열광의 중심엔 무엇보다 타협을 모르는 괴팍한 지휘자 강마에의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력만으로 승부하려 드는 통에 외롭디 외로운 강마에의 모습,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꿈을 잃지 않도록 독촉하고 부추기는 태도가 살기 위해 타협하고 굴복하고 매달려야 하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와 부러움을 안겨준다는 얘기다. 남루한 일상 속에서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은 '괜찮은 리더'에 반했다고나 할까.

강마에 리더십의 첫째는 동기 부여다. 생업인 경찰로 돌아간 강건우가 배우고 싶었던 지휘를 꿈으로 남겨두겠다고 하자 강마에는 대꾸한다. "그게 어떻게 네 꿈이야? 움직이질 않는데.그건 별이지.하다 못해 계획이라도 세워봐야 조금이라도 네 냄새든 색깔이든 발라지는 거 아냐.그래야 네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꿈을 이루라는 게 아냐.꾸기라도 해보라는 거야."

둘째는 훈련에 대한 강조다. "연습도 안 해와,음도 못 맞춰,그런데 음대 나왔다 자만심은 있어,연주는 꼭 오케스트라에서 해야 돼.이거 어쩌나? 욕심도 많네.아줌마 같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구제불능,민폐, 걸림돌,많은 이름이 있는데 난 그 중에서도 이렇게 불러주고 싶어요. 똥.덩.어.리." 첼로 주자 정희연에게 내뱉는 독설이다.

세 번째는 확실한 보상이다. "시향은 시의 소유니까 애국가 연주 정도는 그냥 해라.그런 거 없습니다. 음표 하나,삐 소리 하나까지도 다 보수로 지급될 겁니다. 정해진 1년 행사 외에 갑자기 생기는 관제행사 연주 안 합니다. "

넷째는 공정한 인사다. 학벌,학연,경력,지연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오직 실력만으로 평가한다. 마지막은 비전 제시다. "무엇보다 여러분을 창피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음악을 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힘든 세상에서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게 제가 이 시향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입니다. 여러분도 그 꿈을 같이 꿨으면 좋겠습니다. "

과도한 연습과 독설에 반발,오케스트라를 떠나겠다는 단원들에게 강마에가 사과 대신 하는 약속이다. 강마에는 현실엔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일지 모른다. 제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그런 독설을 견딜 사람은 드물고,타협 없이 살아갈 방법 또한 흔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그런 강마에에게 열광하는 건 끈과 무관한 공정함,노력만큼의 보상에 대한 염원이 그만큼 크고 간절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