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자금난 기업에 선제적 지원

정부가 10년 만에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에 나선다. 이미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워크아웃의 틀과 제도는 만들어져 있지만 워크아웃 이전 단계에서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을 지원한다는 게 10년 전과 다른 점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적용하고 있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신속 처리)' 제도를 대기업 등 일반기업에 확대하고 채권단이 기업들과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른바 '프리 워크아웃(pre-workout.사전 워크아웃) 제도다.

이 과정에서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이 적극적으로 개입,시중은행들과 함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기업들과 성과를 공유할 수 있게 하기로 했다. 특히 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자구 계획을 요구할 뿐 아니라 대출 출자전환 등 '성과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지분을 확보,직접 경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


◆"당근 적은 만큼 채찍도 적게"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전 워크아웃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워크아웃보다 당근이 적은 만큼 채찍도 적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워크아웃은 △법정관리 화의 등 법적 절차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에 의한 구조조정 △채권은행 협의회에 따른 자율 규제 등 세 가지다. 이런 방안들은 채권단이 감자나 경영진 교체 등으로 주주와 경영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신 워크아웃에 참여한 채권단은 기존 채무의 탕감이나 신규 자금 지원 등을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사전 워크아웃은 워크아웃 이전 단계이므로 채무 탕감과 같은 커다란 당근은 없다. 채권단의 신규 자금 지원 등에 대한 강제의무도 없다. 채권단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채찍은 출자전환을 통한 지분 참여 정도여서 기존 주주나 경영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이 지점에서 신보 기보와 산은 기은 등의 개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신보.기보 등도 '성과 공유'

신보 기보 산은 기은 등 국책 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 기관은 지원 대상 기업을 판단하는 데 그동안 축적해온 방대한 기업 심사 데이터를 활용,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신보 기보 기은은 중소기업 관련 대출과 기업 심사에 특화해 왔고,산업은행은 국내 대기업들과 오랜 기간 거래하면서 관련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경우 아직도 기업들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해 정밀한 심사가 어렵다"며 이들 국책 금융기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는 신보 기보 등 국책 금융기관도 '성과 공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장래에 기업들의 성과 실현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대출을 주식이나 전환사채(CB)로 전환하거나 이자 외에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등을 통해 국책 금융기관을 주주로 참여시킴으로써 '이익 공유'라는 권한과 함께 '적극적인 지원'이라는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 대출 이자율을 1~2% 수준으로 거의 제로에 가깝게 감면하되 기업 성공시 이익의 상당 부분을 투자액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모럴해저드 방지,구조조정도 함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구조조정도 기본 원칙 중 하나다. 최근 부도설이 돌았던 모 건설사는 은행들이 만들어 놓은 대주단 협약 틀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사옥 등 자산 매각도 가격이 낮다는 이유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 기업들이 대주단 협약에 가입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대주단 협약 등에 들어오면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은행들과 국책 금융기관이 출자전환 등 성과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들의 지분을 확보하면 이사 파견 등 주주권을 행사해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된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