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ㆍ전자ㆍ유화 등 '비명'

정부가 13일부터 산업용 전기료와 가스료를 9.4%와 9.7% 올리기로 함에 따라 산업계에 말 그대로 '초비상'이 걸렸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줄이 막히고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생존을 걱정하는 기업들이 수두룩 한 마당에 전기·가스료까지 급등하면 앉은 채로 고사(枯士)할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요금 인상분이 결국 소비자 가격에 전가돼 물가를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정부 계획대로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르면 기업들이 추가로 내야 할 비용이 연간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 기업들이 한 해 동안 지불하는 전기료 10조∼11조원에 가격인상률을 곱한 수치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가부담이 그만큼 더 늘어난다는 얘기로 글로벌 수요 부진에 금융시장 혼란이 겹친 위기 상황에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며 "지금으로선 판매가에 바로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력사용량이 많은 철강 전자 유화업계의 속앓이가 특히 심하다. 전기를 이용해 쇳물을 뽑아내는 전기로(電氣爐) 업체인 현대제철은 연간 전기료가 4000억원에 달한다. 전기료가 9% 오르면 곧바로 360억원의 추가 부담이 불가피한 구조다. 전자업체들도 부담이 커졌다. 업체별 연간 전기료는 △삼성전자 4000억원 이상 △LG전자 1100억원 △LG디스플레이 1690억원 △하이닉스반도체 1600억원 등으로 앞으로 연간 100억~400억원 가량의 전기료를 더 내야 할 판이다.

SK에너지 GS칼텍스 삼성토탈 등 유화업계도 채산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울산공장만 해도 이번 가격 인상으로 월 12억원,연간 140억원을 더 부담해야 하고 LG화학은 여수공장 기준으로 연간 100억원,에쓰오일 온산공장은 80억원 정도 부담이 추가될 것으로 내다봤다. LG화학 관계자는 "전기요금은 모두 현금성 비용이기 때문에 기업으로선 더욱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전이 '경영실적 악화로 투자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전기료 인상 배경을 설명하는 데 대해 "지난 10년간 누적이익이 18조원을 넘는 상황에서 지난 1분기에 일시적으로 영업적자를 냈다고 무작정 요금부터 올리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제조업체들의 지적이다.

산업용 전기료를 가정용에 비해 큰 폭으로 올리려는 정부에 대해서도 불만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의 60% 이상은 심야의 잉여전력으로 가정용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산업용 전기료만 꾸준히 인상돼 왔다는 것도 업계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