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73년전 '뻬룩만' 이 가져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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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ㆍ과학사>
스웨덴 과학자 '자연표본' 수백점 수집
후손에 물려줄 과학사박물관 건립해야
오늘 국립과천과학관이 문을 연다. 과천과학관은 준비 8년 만의 개관인데,이로써 우리나라는 제일 크고 최신식인 또 하나의 과학관을 갖게 됐다.
전 세계에 과학관이 많아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과학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일진대 그것을 알리려는 노력이 이렇게 과학관 건립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과학이 세분화,전문화하면서 과학관도 갖가지 '전문'과학관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천문과학관,석탄과학관,산림과학관,수산과학관,'사과'과학관 등 다양한 모습의 작지만 알찬 '전문'과학관들이 많아지고 있다. '전국과학관협회'에 등록된 경우는 서울 6개,경기 11개를 포함해 전국에 69개로 돼 있지만,실제로는 그보다 좀 더 많을 듯하다. 물론 이 정도로는 미국 1900개 이상,일본 800여개라는 통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국립과천과학관의 개관은 나에게 또 다른 뜻에서 안타까움을 더해 준다. 우리나라에는 '과학관'만 있지 '과학사박물관'은 단 하나도 없어서 말이다.
20년 전의 일이다. 신문에 '과학사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문화공보부 장관의 발표가 있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이 지금은 사라진 조선총독부 건물로 이사하자 그 자리에 과학사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담당 장관의 발표였다. 하지만 그 후 그 말은 더 들리지 않았고,그 자리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들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장관은 이원홍씨인데 재임기간이 1985년 2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니 그 사이의 일일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은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조선을 방문했던 스웨덴의 동물학자 베리히만(1895~1975)이 가져간 조선의 동물 표본 수백점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1935년 3월16일자 동아일보에는 '서전교수(瑞典敎授)'에게 '곤충표본기증-과학지식고급회昆蟲票本寄贈-科學智識普及會)에서'라는 짤막한 기사가 있다. 과학지식보급회에서 조선을 방문 중인 스웨덴의 대학교수 '뻬룩만'씨 환영회를 열고 곤충 표본 수백점을 기증했다는 것이다.
아직 상세한 조사가 없지만,19세기 초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 땅에는 수많은 외국 과학자들이 찾아와 온갖 표본을 채취해 갔다. 유럽의 탐험가와 학자들이 동식물과 광물 표본을 채집했고,19세기 말부터는 일본인이 그 뒤를 이었다. 그 많은 조선의 자연 표본은 지금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까. 1935년 '뻬룩만'이 얻어간 수백점의 곤충 표본 가운데 일부는 지금 어느 지하창고에 잠자고 있지 않을까. 혹시 그 가운데 일부나마 되찾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런 경우 한국에 과학사박물관이 있다면 거기서 이를 받아 전시할 수 있으련만… 하는 생각이다. 이들 흘러나간 우리 자연의 표본은 그 자체가 한국 과학사의 한 부분이다.
때맞춰 엊그제 '나비박사' 석주명(1908~1953)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석주명이 나비 채집과 분류에 골몰한 것은 바로 이런 외국 과학자들이 우리 강산을 헤집고 다니는 것에 자극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큼직한 국립과천과학관이 태어났으니 다음은 '과학사박물관'도 하나 만들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거기에는 일반 과학관에서 다룰 수 없는 오만가지 전시가 가능할 것이다. '뻬룩만'만 해도 스웨덴에서는 한국,캄차카,뉴기니아 등을 탐험한 동물학자로 유명하고,게다가 그는 '한국의 야생동물지'(한국어 역)란 책도 남기고 있다. 그에 대한 사실과 그의 표본을 전시할 수 있다면,그리고 수많은 비슷한 다른 과학자들의 표본을 구해올 수 있다면 그 아니 훌륭한가! 100~200년 전의 우리 자연환경을 되살려 보는 기회도 될 것이니….
스웨덴 과학자 '자연표본' 수백점 수집
후손에 물려줄 과학사박물관 건립해야
오늘 국립과천과학관이 문을 연다. 과천과학관은 준비 8년 만의 개관인데,이로써 우리나라는 제일 크고 최신식인 또 하나의 과학관을 갖게 됐다.
전 세계에 과학관이 많아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과학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일진대 그것을 알리려는 노력이 이렇게 과학관 건립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과학이 세분화,전문화하면서 과학관도 갖가지 '전문'과학관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천문과학관,석탄과학관,산림과학관,수산과학관,'사과'과학관 등 다양한 모습의 작지만 알찬 '전문'과학관들이 많아지고 있다. '전국과학관협회'에 등록된 경우는 서울 6개,경기 11개를 포함해 전국에 69개로 돼 있지만,실제로는 그보다 좀 더 많을 듯하다. 물론 이 정도로는 미국 1900개 이상,일본 800여개라는 통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국립과천과학관의 개관은 나에게 또 다른 뜻에서 안타까움을 더해 준다. 우리나라에는 '과학관'만 있지 '과학사박물관'은 단 하나도 없어서 말이다.
20년 전의 일이다. 신문에 '과학사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문화공보부 장관의 발표가 있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이 지금은 사라진 조선총독부 건물로 이사하자 그 자리에 과학사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담당 장관의 발표였다. 하지만 그 후 그 말은 더 들리지 않았고,그 자리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들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장관은 이원홍씨인데 재임기간이 1985년 2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니 그 사이의 일일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은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조선을 방문했던 스웨덴의 동물학자 베리히만(1895~1975)이 가져간 조선의 동물 표본 수백점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1935년 3월16일자 동아일보에는 '서전교수(瑞典敎授)'에게 '곤충표본기증-과학지식고급회昆蟲票本寄贈-科學智識普及會)에서'라는 짤막한 기사가 있다. 과학지식보급회에서 조선을 방문 중인 스웨덴의 대학교수 '뻬룩만'씨 환영회를 열고 곤충 표본 수백점을 기증했다는 것이다.
아직 상세한 조사가 없지만,19세기 초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 땅에는 수많은 외국 과학자들이 찾아와 온갖 표본을 채취해 갔다. 유럽의 탐험가와 학자들이 동식물과 광물 표본을 채집했고,19세기 말부터는 일본인이 그 뒤를 이었다. 그 많은 조선의 자연 표본은 지금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까. 1935년 '뻬룩만'이 얻어간 수백점의 곤충 표본 가운데 일부는 지금 어느 지하창고에 잠자고 있지 않을까. 혹시 그 가운데 일부나마 되찾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런 경우 한국에 과학사박물관이 있다면 거기서 이를 받아 전시할 수 있으련만… 하는 생각이다. 이들 흘러나간 우리 자연의 표본은 그 자체가 한국 과학사의 한 부분이다.
때맞춰 엊그제 '나비박사' 석주명(1908~1953)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석주명이 나비 채집과 분류에 골몰한 것은 바로 이런 외국 과학자들이 우리 강산을 헤집고 다니는 것에 자극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큼직한 국립과천과학관이 태어났으니 다음은 '과학사박물관'도 하나 만들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거기에는 일반 과학관에서 다룰 수 없는 오만가지 전시가 가능할 것이다. '뻬룩만'만 해도 스웨덴에서는 한국,캄차카,뉴기니아 등을 탐험한 동물학자로 유명하고,게다가 그는 '한국의 야생동물지'(한국어 역)란 책도 남기고 있다. 그에 대한 사실과 그의 표본을 전시할 수 있다면,그리고 수많은 비슷한 다른 과학자들의 표본을 구해올 수 있다면 그 아니 훌륭한가! 100~200년 전의 우리 자연환경을 되살려 보는 기회도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