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름답고 억센 스칼렛 오하라는,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리자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에 엎드려 울다 고개를 들고는 눈물 젖은 눈으로 먼 데를 보며 이렇게 읊조렸다. "돌아갈 테야,그리고 그이를 되찾을 방법을 생각해야지,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테니깐."
힘에 겨운 일들이 밀어닥칠 때마다 떠올려보는 장면이자 대사다. 실연이든 파산이든,실패든 파경이든,상실이든 절망이든,우울이든 불안이든,과도한 업무든 불규칙한 생활이든,가지가지 이유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전긍긍,절치부심,와신상담,안절부절로 전전반측일 때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잖아"라고 읊조린 후 나는 일단 자고 본다. 잘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나는 정말,내일의 새로운 태양을 사랑한다. 내일의 새로운 태양이 있기에 세상은 오늘 살아볼 만한 것일 게다. 그러나 내일의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잠에 '목숨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체적인 한계에서 비롯되는 것도 있겠지만 먹을래 잘래,놀래 잘래,운동할래 잘래,물으면 나는 늘 잘래를 선택할 준비가 돼 있다. 잠은 내게 보약 그 이상이다. 잘 잔다는 건 잘 살고 있다는 척도이기도 하다. 잠 못 이루는 날들을 보내본 사람들은 안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안다. 잘 자기 위해서는,깨어 있을 때 정말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처에서 여러 날 공동 작업을 해야 했다. 맡은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첫째날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이튿날 새벽에 눈을 좀 붙이려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계속 '온(ON)' 상태였다. 잠자리가 낯설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틀을 못잔 몸은 몸이 아니다. 신경이 올올이 곤두서고 감각은 말미잘처럼 흐느적거리게 마련이다. 셋째날 밤에도 머릿속은 '오프(OFF)'되지 않았다. 수면제를 먹어 보았으나 비몽사몽에 시달렸을 뿐이다. 임무가 일단락된 넷째날 밤에서야 잘 수 있었다.
만성의 수면부족과 피로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 잠시 눈을 붙일 만한 수면방을 꿈꾸곤 했었다. 그 꿈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수면방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곤 했다. 젖을 수 있는 소파 형태의 침대에 누우면 소파 상단의 캡슐이 살짝 내려와 시야를 가려준다. 캡슐 안에는 조명,음향,스크린,아로마 시설 등이 갖춰져 있어서 조명과 소리와 향기 등이 선택 가능하다. 이런 수면(숙면) 사업은 앞으로 유망한 사업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점점 더 과로하고 점점 더 피로하고 점점 더 잠 못 이루고 있으므로.
내게 잠은,움켜쥐었던 것을 잠시 놓을 때 깜빡깜빡 밀려오곤 한다. 잘 자려면 낮 동안 적당히 피곤할 만큼만 움켜쥐어야 하고,잘 자려면 그렇게 움켜쥔 것들을 매일 밤 가뿐히 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하루를 잘 살아야 밤에 잘 잘 수 있고,한평생을 잘 살아야 크나큰 잠에 잘 들 수 있을 것이다.
몸과 마음에 겨운 일들이 엄습해올 적이면 일단 자고 보자.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잠시만 놓아 보자.잘 자고 나면 몸과 마음은 움켜쥐고 있던 것들에 한결 유연한 거리감을 갖게 될 것이다. 잠의 자기 정화작용,자기 치유능력이리라.
어렵고 힘든 날들이 고공행진중이다. 잠 못 이루는 밤들도 더 많아지리라.그래도 우리는,밤이 오면 일단 잘 자고 볼 일이다. 양치질을 하며 전인권의 까칠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불러본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