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복회'사건으로 본 契의 경제학

"다음 달엔 나도 곗돈을 탈 수 있는 거지?" "김 여사…해외 여행 간다던데…혹시…."

강남 부자들의 계(契) 모임으로 알려진 '다복회' 사건이 터지면서 '내 곗돈은 안녕하신지'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계원들에게 계주의 '먹튀' 여부를 묻는 사람들은 그나마 양반이다. 뜬금없이 계주에게 전화를 걸어 "내 곗돈 먹고 튀면 혼날 줄 알라"고 경고하는 계원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성인이라면 '먹자계'나 '여행계' 같은 친목 모임 하나 들지 않은 사람이 없듯 중ㆍ장년층이라면 다복회 정도는 아니라도 목돈 마련을 위한 '금전계' 한두 개에 드는 건 기본처럼 돼 있다. 통계가 제대로 잡힐 리 없지만 "한 달 움직이는 곗돈의 규모가 친목계까지 포함하면 조 단위가 넘는다"(대부업협회)는 주장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계 모임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친목 또는 네트워킹이라는 중요한 의미도 있지만 다복회 같은 금전계의 경우 부자들이 세액에 노출되지 않고 돈을 불리기 위해 가입하고 일반 서민들은 급전을 조달하기 위해 든다"고 설명했다.

계 모임이 활성화되는 이유는 또 있다. 나름대로 그 안에 합리적인 금융 원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전계 중 가장 일반화돼 있는 '낙찰계'를 예로 들어 보자.친목계에서 자주 쓰이는 '순번계' 방식은 구성원들의 합의로 정해진 순서대로 곗돈을 받는 데 반해 낙찰계는 일반 경매와 같은 형태로 진행된다. 이자나 월 불입금을 높이 부르거나 수령할 곗돈을 낮게 적어 내는 계원들부터 차례대로 곗돈을 받는 것이다. 또 곗돈을 타면 그 다음 달부터는 이자 비용으로 월 불입금 외에 월 5~10%의 이자를 추가로 내야 하는 낙찰계도 있다. 그 이자의 일부분은 후순위로 곗돈을 받는 계원들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곗돈을 미리 받는 계원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린 대출자와 같은 처지가 되고 아직 곗돈을 받지 않은 계원은 은행 정기적금에 가입한 형태가 된다.

후순위로 곗돈을 받는 이들은 곗돈을 못 받을 리스크에 대한 대가로 선순위자들에 비해 더 많은 이자를 받거나 더 적은 곗돈을 낸다. 은행 역할을 하는 계주는 좋은 순위의 곗돈을 탈 수 있는 권리를 갖거나 선순위자들이 낸 이자의 일부 또는 곗돈을 관리하면서 나오는 이자를 수고비 조로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고수익인 만큼 위험이 상존한다. 일단 계원들이 곗돈을 제때 내지 않으면 삐걱대기 시작한다. 다복회 사건처럼 계원들의 연체가 늘거나 계주가 도주하면 계는 깨지고 만다. 올초에는 경북 상주에서 계주가 수십억원을 들고 잠적하는 일이 발생했고 작년 말 경북 영덕에서는 면 주민 전체가 피해자가 돼 동네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계에서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일반 투자처럼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우선 계 모임에서 복수의 계좌를 튼다면 한 개는 일찍 곗돈을 타도록 하고 나머지는 후순위로 돌려 놓아야 한다. 계가 깨지더라도 피해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약서를 작성할 때 사고 발생시 곗돈을 받을 수 있는 안전 장치를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법원은 계주에게 곗돈을 지급해야 할 의무를 지우고 있지만 다른 일반 계원들에게는 변제 책임을 부과하지 않고 있어 계주가 도주할 경우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심지홍 단국대 소비자금융연구소장은 "계원 한 사람만 연체해도 문제가 되는 만큼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계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