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빛 뽀얀 속살 은은한 향 일품

기이하다. 투박하고 거친 껍질에 상아빛 속살을 지닌 전복은 외관이나 맛이 참으로 독특하다. 진시왕의 불로 전설에 등장할 만큼 오랫동안 패류의 왕으로 군림한 절대 강자이면서 맛은 의외로 담백하다. 오히려 무미에 가깝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은근한 속향은 코로 맡아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코로 전이되는 향이 난다.

자연산 전복의 뽀얀 속살은 회로 먹으면 입에서 살캉거리며 아주 은은한 향을 입안에 퍼뜨린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뜨거운 여인의 은근한 눈빛 같은 맛이다. 워낙 비싼 재료라 자연산 전복을 예나 지금이나 회로 먹을 수 있는 호사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복을 일반인들이 맛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전복죽을 빼놓을 수 없다. 재료가 왕이라서 그런지 전복죽은 죽의 왕이다. 전복의 꽃이라 불리는 초록색 게우(내장)를 밥과 함께 끓이면 게우가 밥 알 사이로 스며든다. 끓이면서 밥알과 자박자박한 국물은 노란색으로 변한다. 마지막으로 전복을 잘라 넣는다. 게우를 머금은 밥알은 기름지고 구수하면서도 입이 좋아할 쌉싸래한 맛을 낸다. 사람 입맛 돋우는 데 이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밥알 사이사이로 진주처럼 박힌 오돌오돌한 전복의 살점들이 죽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전복을 즐겨먹는 민족은 전 세계적으로 한ㆍ중ㆍ일 3개국뿐이다. 해산물을 별로 먹지 않는 중국인들이지만 마른 해삼과 더불어 마른 전복은 최고의 식재료로 여긴다. 홍콩의 유명식당은 전복 스테이크 한 접시에 50만원도 넘게 받는다. 날것을 먹지 않는 중국인답게 마른 전복을 물에 불려 사용한다. 딱딱한 전복을 부드럽게 해서 먹는데 이만한 방법이 없다. 한국인들도 오래 전부터 마른 전복을 먹어왔다. 전복은 말리면 담백한 맛에 깊은 감칠맛이 더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마른 전복스테이크는 전복요리의 정점으로 손꼽힌다.

일본인들은 '사시미'의 나라답게 주로 회로 먹는다. 일본의 신사에서는 전복을 신에게 드리는 공물로 사용할 정도로 귀하게 여긴다.

문제는 가격이다. 자연산 전복의 가격은 ㎏당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언젠가부터 전복을 하는 식당이 많아졌다. 가격이 저렴해져서다. 무슨 일인가. 양식 때문이다. 완도 제주에 이어 진도 해남까지 전복을 대량 양식하게 된 덕분에 이제 일반인들도 사시사철 먹을 수 있게 됐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양식 전복은 자연산 전복이 주는 은근한 향과 찰지면서도 쉽게 잘라지는 부드러움을 맛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전복 특유의 오돌오돌 씹히는 느낌과 고소한 맛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편이다.

/박정배 음식평론



"암환자에 해롭다" 낭설

전복은 단백질이 풍부하면서도 지방질이나 열량이 적어 예로부터 보양식 중의 최고로 꼽혀왔다. 여러 가지 아미노산이 풍부한데 이들은 특유의 맛을 내면서 또한 면역계 강화에 도움을 준다. 엘라스틴이나 콜라겐 등이 풍부하기 때문에 날로 먹으면 오독거리는 씹는 감촉을 느끼게 된다. 마른 전복은 아미노산이 활성화돼 흡수되기 좋은 형태로 변한다. 영양이 더욱 풍부해지며 맛의 깊이를 더한다. 간혹 암환자가 전복 같은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암이 오히려 악화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전혀 사실과 다르다. 환자의 전신건강 상태는 암의 예후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암환자의 투병과 치료에는 풍부한 영양공급이 필수이며 전복도 훌륭한 건강식으로 추천될 수 있다.

/조성제 내과 원장(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