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중기 금융애로 현장] 공무원 동행하자 "적금해약 해 주겠다" 돌아서자 은행 태도돌변 '꺾기' 또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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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2시께 서울 강남의 한 시중은행 지점. 인근 지역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김모 대표가 서울지방중소기업청 담당 직원과 함께 은행을 찾았다. 경기불황으로 운영자금이 필요해 이 은행에 들어 놓은 1억5000만원 상당의 기업적금을 해약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해 중기청에 동행을 요청했던 것.
김 대표는 "지난주에 은행 지점을 방문했으나 기업적금을 해약하려면 본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하며 적금을 되돌려 받으려면 다른 적금에 들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날 김 대표와 중기청 직원이 은행을 들어선 지 20분여 뒤 이들은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은행문을 나섰다. 은행 측이 기업적금을 해주기로 순순히 응해줬다는 것. 은행 관계자는 "본점 승인을 요청했으며 계약해지가 될 것"이라는 답변을 들려줬다는 설명이었다. '꺾기' 요청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나서 은행 지점으로부터 다시 김 대표에게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기업적금을 해지해 줄 테니 매달 1000만원짜리 다른 적금에 가입해달라"는 것이었다. 기자와 현장을 동행했던 김 대표는 "공무원과 동행할 때는 중소기업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처럼 행동하더니 뒤늦게 꺾기를 요구한다니 말이 되느냐"며 "요즘 은행들의 행태가 바로 이런 식"이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을 터뜨렸다.
동행했던 중기청 직원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와 직원은 다시 은행 측과 상의,내일(18일) 다시 지점을 방문하기로 하고 다음 일정을 잡았다.
김 대표는 "우리 회사는 그동안 연체가 하나도 없지만 더 심해질 불황에 대비해 적금해지를 요구했는 데도 이 정도"라며 "우리보다 더 어려운 회사는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보지 않아도 뻔하지 않느냐"며 기자에게 중소기업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했다.
이 회사가 이 은행에 든 기업적금 총액은 지금까지 1억5000만원. 또 다른 은행으로부터 빌린 대출금액은 올해 초 거치기간이 끝나 매달 3150만원 정도의 원금을 상환하고 있다. 여기에 이자 1850만원과 기업적금 불입액 1350만원을 합치면 매달 금융부담만 6350만원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기업적금을 해지하고 원금상환 연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
김 대표는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상환 시점을 연장시켜주고,기업적금을 자유롭게 해지해 주는 대책이 가장 시급하다"며 "이 두 가지만이라도 해결되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