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MOU 협상 막바지에 권유
"자금 마련 조언일뿐"…한화 움직임 촉각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앞두고 있는 산업은행이 한화 측에 핵심 계열사 한두 곳을 매각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제계는 산업은행의 진의와 향후 한화 측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17일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14일 밤,한화 측에 핵심 계열사 매각을 권유한 사실이 있다"며 "최근 대형 기업들을 인수했다가 낭패를 겪는 사례가 많아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매각을 요구한 것이 아니며 보다 원활한 인수자금 마련을 위한 조언이었다"고 설명했다.

◆산은 의도 뭘까

금융계는 산은이 한화의 인수자금 조달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근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잔뜩 얼어붙어 있는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산은이 중요한 협상장에서 아무런 의도 없이 매각을 권유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산은은 국책은행 성격상 '돈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가지기 어렵다"며 "만약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한화그룹의 부실로 이어질 경우 산은도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화는 부채비율이 230%대에 달하고 대우조선해양 인수자금 조달의 한 축인 한화석유화학의 차입금도 지난 넉 달 사이에 8000억원이나 증가한 상태다.

따라서 산은은 한화가 핵심 계열사 매각에 나설 경우 △그룹의 차입구조를 중·장기로 전환해주거나 △주요 계열사들의 회사채 인수를 늘리거나 △계열사를 사들이는 투자자들의 인수자금을 중개하는 등의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물망에 오르는 계열사는

한화는 일단 산은의 권유 사실 자체에 대해 시인도,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6조원이 넘는 인수자금 중 4조원 이상을 자체 자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한화로선 기존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계열사 매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금융시장 경색으로 대한생명 지분 매각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는 분위기다.

경제계 관계자는 "한화는 내년 3월 말까지 대우조선해양 인수대금을 완납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물불 가리지 않는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최근 김승연 회장이 "경우에 따라 나도 희생할 수 있다"고 비상한 각오를 밝힌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제계 일각에선 한화가 계열사 처분에 나설 경우 주력인 ㈜한화나 한화석화,대한생명보다는 서비스·레저부문의 백화점이나 리조트 부문을 최우선 순위에 올릴 것으로 점치고 있다. ㈜한화의 경우 김 회장이 20.2%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고,한화석화와 대한생명 역시 그룹의 지배구조를 떠받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어 매각이 어렵다는 것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