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처방안 '동문서답'

"은행에서 선수금 환급보증서(RG)만 끊어주면 살 수 있다. "(중소 조선업계 관계자)

"우리가 답변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은행연합회 대주단 사무국)

은행연합회가 1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중소기업 지원 패스트 트랙 설명회'엔 중소 조선사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정작 조선업계의 위기를 정리할 방법은 제시되지 않은 채 공허하게 끝났다.

대부분의 조선사가 RG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은행연합회는 이에 대한 대답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 RG란 선주가 발주한 선박이 납기지연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경우 조선사에 이미 지급한 선수금을 은행이 대납한다는 일종의 지급보증서다.

조선업체는 통상 선수금을 받아 배를 만들어 잔금을 받는데 은행들이 올해 하반기부터 중소 조선사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RG 발급을 중단,수주 자체가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 조선소 관계자가 "패스트 트랙을 신청하면 RG를 받을 수 있나"라고 질문하자,연합회 측은 "이곳은 키코 피해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전반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패스트 트랙을 설명하는 자리"라면서 "RG 문제는 논의된 바 없으며 명확히 답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답했다.

"조선사에 대해 대주단 협약을 만들 계획이 있나"라는 질문에도 연합회는 "정책을 세우는 입장이 아니라 답변할 권한이 없다"는 알맹이 없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설명회는 40여분 만에 끝났고 참석자들은 불만을 토로하며 설명회장을 떴다. 조선소의 한 관계자는 "조선업계의 문제는 RG 발급이 안 돼 선박 생산을 못하는 것"이라며 "업계 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정책 홍보 설명회나 하는 정부와 은행권을 구조조정하는 게 낫겠다"고 흥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정부나 은행권이 조선업계를 위해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생색내기용'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한편 금융당국은 조선업체의 경우 패스트 트랙과 워크아웃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해 개별 업체별로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다. 박영춘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대형 조선사는 수주능력이나 보유 현금 등을 고려하면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없다"며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 조선사에 한해 중기지원 패스트 트랙을 이용해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엔 300여개의 조선사가 있으며 이 가운데 1만t급 이상 상선을 만들 수 있는 곳은 30여곳에 이른다.

김현석/장창민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