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판매부진 불똥 … 공장가동률 절반이하로 직원들 30% 휴가 보내"

"공장 가동률이 두세 달 전의 절반도 안됩니다. 이런 소문이 나돌면 은행이 당장 대출금부터 회수할까봐 어디에 하소연도 못합니다. "

경기 평택시 포승국가산업단지 내에서 자동차용 엔진부품을 만드는 A사 임원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그는 "가동률이 떨어진 만큼 직원의 30% 정도에 대해 일단 휴가를 보내놓은 상태"라며 "지난달까지만 해도 감내할 만한 수준이었는데,이달 들어 수주 물량이 뚝 떨어져 막막하다"고 말했다.

18일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밀집한 포승공단은 을씨년스런 모습이었다. 부품 원자재 및 완성품이 쌓여 있어야 할 공장 앞마당마다 빈 수레만 가득했다. 브레이크 패드를 생산하는 한 업체 간부는 "지난 여름 완성차 노조 파업으로 한 차례 위기를 겪었는데,이번엔 글로벌 자동차시장 침체로 공장을 세워야 할 판"이라며 "직원들을 막바로 정리해고할 수는 없어 노동부에 고용유지 지원금을 신청한 뒤 버텨볼 방침"이라고 전했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무더기 도산위기에 몰린 것은 완성차 업체들이 글로벌 수요 부진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등 국내 5개 완성차의 지난달 수출은 작년 같은 달보다 4.5% 줄어들었고,이달 1~10일 내수 판매량은 작년 동기 대비 35% 급감했다. 이러다 보니 GM대우는 다음 달 22일부터 인천 부평 등 모든 공장의 가동을 일시 중단키로 했다. 쌍용자동차는 전환배치 등을 통해 평택공장 생산량을 줄일 방침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감산에 나서면,협력사들이 1차 타격을 받는 구조다.

부품업체들은 물량 감소와 함께 유례없는 납품단가 인하압력을 받고 있다. P사 관계자는 "국제 원자재값이 내려갔다는 이유로 원청업체로부터 납품단가를 5~10% 낮출 것을 통보받았다"며 "지금은 마른 수건이라도 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만도 평택공장의 송석종 생산팀장은 "잠김방지 제동장치(ABS) 등 부품 주문량이 최근 들어 5~10% 감소했다"며 "요즘 생산팀 작업의 70~80%가 원가절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소업체들은 수출로 활로를 뚫어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고 했다. 범퍼를 만드는 N사 관계자는 "이달엔 모든 임원들이 해외 판로를 뚫기 위해 출장길에 오른 상태"라고 말했다.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E사 대표는 "국내 경기가 최악이어서 지난주 수출 확대를 위해 유럽에 출장을 갔었다"며 "현지 시장 분위기가 국내보다 더 심각해 세일즈를 포기하고 중도에 귀국했다"고 전했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의 김산 기획조사팀 부장은 "당장 대규모 부도사태가 발생하진 않겠지만,내년 초 완성차 업체들의 납품가격 인하압력이 더 거세지면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병문 한국주물조합 이사장은 "가장 큰 문제는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은행 창구에서 실질적인 자금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택=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