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정말 미치겠어요. 유동성에 문제가 없는데 대주단에 들어오라니….우리나라 건설사들을 모두 은행이 관리하겠다는 건가요. "

대형건설사인 A사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건설사 구조조정을 위한 대주단(貸主團ㆍ채권단협의회) 가입 문제로 건설업계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고 있다. 부실 건설사들이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가입을 꺼려하자 정부가 직ㆍ간접적으로 대형사의 가입을 종용하면서 일이 더욱 꼬였다. 재무구조가 양호한 대형사들은 대주단에 가입하라는 요구가 불쾌하다. 반면 중소업체들의 집단 가입을 유도하려면 대형사의 '희생정신'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18일 "가능한한 많은 건설사가 대주단에 가입해 금융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건설협회를 통해 100위권 이내의 건설사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건설협회는 이달 들어서만 세 차례나 협조 공문을 회원사에 보냈다. 그는 "대형 건설사에도 주채권은행이 나서서 개별접촉하고 있다"며 "(자금 등에) 애로사항이 있다고 판단되면 미리 가입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당하는 건설사들은 죽을 맛이다. 대형사인 B사 관계자는 "이런 저런 채널을 통해 얘기(압력)들이 많이 들어와 곤혹스럽다"고 털어놨다. C사 관계자는 "정부에서 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푸념했다. 대형사들로서는 공개적으로 대주단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말하기 힘들다. 판을 깬다는 오해를 사면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어서다. 그러면서도 가입할 경우 이미지가 손상받고 수주에 지장이 올까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정부가 건설사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대주단에 일괄 가입토록 하는 일은 해외에서도 사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도 대주단과 비슷한 부도유예협약 제도가 있었죠.상당수 기업이 들어갔다가 결국 퇴출됐어요. 그래서 얻은 닉네임이 부도촉진협약입니다. "(대형건설사 임원) 대형사들에 들러리 설 것을 강요하고 있는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이건호 건설부동산부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