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산업은 과거 독점산업이었다. 경제학 교과서대로라면 거대 네트워크 산업이고, 그 진입장벽 때문에 자연독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통신기술 발전은 통신산업을 더 이상 자연독점이 아닌 경쟁가능한 산업으로 만들어놨다.

우리나라 최고 통신기업으로 불리는 KT는 2002년 민영화됐다. 지금 정부 주식은 단 한 주도 없다. 그렇다면 KT는 완벽한 민간기업인가. KT의 최고경영자(CEO) 구속사건을 보면 아직도 여기에 의문부호를 찍지 않을 수 없다.

KT 직원들은 해외에 나가면 밖에서 자신들을 그렇게 부러워한다는 말을 한다. 사명(社名) 자체가 한국을 대표하는 통신기업인 데다 외국인 눈엔 IT 강국 한국의 이미지가 그대로 연상되는 까닭이다. KT는 외국인지분이 40%대에 달하고,SK LG 등과 경쟁하는 대기업이다. 유선전화 쇠퇴로 정체를 겪고 있지만 와이브로 IPTV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면서 글로벌 미디어그룹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그 와중에 CEO 구속은 KT에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납품비리 사건이 터지자 밖에선 KT가 공기업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들이 쏟아졌다. KT 내부에서는 사장의 구속 배경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그렇다고 KT가 민영화된 뒤 얼마나 뼈를 깎는 변신노력을 했느냐는 질책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KT를 상대한 기업들은 KT가 아직도 '관료적'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찾아가면 KT는 100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지만 경쟁회사를 찾아가면 10일 내엔 소식이 온다는 비유도 있다. 좋게 말해 관료적이란 것이지 옛날 공기업 때와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KT 탓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아직도 KT를 공기업으로 바라보는 외부의 잘못된 인식이 그렇다.

KT 사장 수사설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신임사장 얘기부터 튀어나왔다. 여권과 가까운 사람들이 대거 후보에 등장했다. 야당 정치권도 끼어들었다. 민주당은 KT 사장선임 절차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민노당은 특정인을 지목해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고 나섰고,민노총 산하 전국IT산업노동조합연맹도 같은 성명을 냈다.

영락없는 공기업의 인사 풍경이다. 심지어 사장 선임과정에서 '경쟁사,계열사 임직원 배제'라는 내부 정관까지 논란거리가 되는 걸 보면 KT가 민영화된 기업인지 의심케 한다.

인사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자기 맘대로 안 되면 종종 KT 지배구조를 들먹인다. 소위 주인없는 기업에 대한 회의론인데 그 핵심은 자신들이 더 이상 주인이 아니라는 아쉬움에 있다. 여기에 시민단체들은 통신요금 등이 이슈가 될 때면 KT를 공기업으로 착각해 버린다(아니,그렇게 생각해 버린다).일부 언론도 마찬가지다.

민영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규제산업에 속하는 회사이고 보면 그 비리가 결코 내부적 요인만으로 일어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외부의 검은 손들이 없어져야 한다. 정치권에서,정권에서 KT를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비리는 끊이지 않을 것이고,KT도 실질적으로 민영화됐다고 말할 수 없다. 정부 주식이 하나도 없는 KT,그러나 KT 민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