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광장'은 역사의 산물…난 기록자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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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광장'은 역사의 산물…난 기록자일 뿐"
내년 등단 50년 맞는 최인훈씨 기자 간담회
전위적인 취향을 맘껏 발휘할 신작 준비 중
"좋은 글감이 내 눈앞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4ㆍ19라는 역사적 사건이 큰 조명등처럼 우리 생활을 비추어 주었기 때문에 똑똑하지 못한 사람도 그때는 원래보다 더 총명해질 수 있었고 영감과 재능이 부족했던 예술가들도 갑자기 크게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광장≫은 그때가 아니었으면 쓰지 못했을 겁니다. ≪광장≫이 제 문학적 능력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서기로서 쓴 작품이지요. "
내년이면 등단 50년,문학인생 반세기를 맞는 소설가 최인훈씨(72)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1960년 발표한 소설 ≪광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하찮은 한 개인이 젊은 나이에 접한 큰 사건을 문학이라는 강력한 형식을 통해 소회를 남길 수 있었다"면서 "나는 아직도 발표 당시 심정 그대로"라고 덧붙였다.
최씨는 당시 잡지 <새벽>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서문에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썼다.
그동안 ≪광장≫은 수정을 거듭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을 댔다는 최씨는 "집필 당시에는 역사를 본 느낌을 전달하고 증언하는 데에만 숨가빴는데,시간이 흐를수록 문학성을 보강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한 글자라도 좋은 모습으로 고쳐 후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번에 출간된 신판 최인훈 전집(문학과지성사) 속의 ≪광장≫도 한 부분을 수정했고,다음에도 중요한 대목을 고칠 계획이다. ≪광장≫은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그동안 159쇄(약 55만부)를 찍었다. 2004년 국내 문인들이 뽑은 한국 최고의 소설로 선정됐으며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가장 많이 수록된 작품이기도 하다.
최씨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군대에 가서 썼는데 책이 나올 땐 일선에 있었다"면서 "원칙상 윗선의 허락을 받고 책을 내야 하는 일이지만 다행히 별일 없이 넘어갔다"고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또다른 대표작 ≪화두≫에 대해서는 "소련 붕괴는 나에게 4ㆍ19 수준의 사건이었다"면서 "오랫동안 할말이 없어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 '침묵의 시대'를 보내고 있었는데,소련 붕괴라는 큰 사건이 '꽝'하고 내 등을 떠밀더니 이야기가 나오더라"고 고백했다.
그는 "대학생 시절 강의실에서 나와 먼지구덩이에 파묻혀 있던 이론서 등을 뒤적인 일이 결국 ≪화두≫의 소재가 되더라"면서 "왜 그때 대학 졸업장을 그리 헐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고 대학을 중퇴한 과거를 회상했다. 2001년 서울예술대 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옛날 책을 되풀이해 읽는 등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최씨는 소설집 한 권 분량의 원고뭉치를 가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내 머리 속에서는 언제나 정치와 언어예술이 얽혀 있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미학적"이라면서 "이번 원고는 전위적인 취향을 마음껏 발휘한 글이자 언어예술가로서 쓴 순수하고 심미적인 작품인데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소설집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전위적인 취향을 맘껏 발휘할 신작 준비 중
"좋은 글감이 내 눈앞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4ㆍ19라는 역사적 사건이 큰 조명등처럼 우리 생활을 비추어 주었기 때문에 똑똑하지 못한 사람도 그때는 원래보다 더 총명해질 수 있었고 영감과 재능이 부족했던 예술가들도 갑자기 크게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광장≫은 그때가 아니었으면 쓰지 못했을 겁니다. ≪광장≫이 제 문학적 능력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서기로서 쓴 작품이지요. "
내년이면 등단 50년,문학인생 반세기를 맞는 소설가 최인훈씨(72)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1960년 발표한 소설 ≪광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하찮은 한 개인이 젊은 나이에 접한 큰 사건을 문학이라는 강력한 형식을 통해 소회를 남길 수 있었다"면서 "나는 아직도 발표 당시 심정 그대로"라고 덧붙였다.
최씨는 당시 잡지 <새벽>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서문에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썼다.
그동안 ≪광장≫은 수정을 거듭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을 댔다는 최씨는 "집필 당시에는 역사를 본 느낌을 전달하고 증언하는 데에만 숨가빴는데,시간이 흐를수록 문학성을 보강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한 글자라도 좋은 모습으로 고쳐 후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번에 출간된 신판 최인훈 전집(문학과지성사) 속의 ≪광장≫도 한 부분을 수정했고,다음에도 중요한 대목을 고칠 계획이다. ≪광장≫은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그동안 159쇄(약 55만부)를 찍었다. 2004년 국내 문인들이 뽑은 한국 최고의 소설로 선정됐으며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가장 많이 수록된 작품이기도 하다.
최씨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군대에 가서 썼는데 책이 나올 땐 일선에 있었다"면서 "원칙상 윗선의 허락을 받고 책을 내야 하는 일이지만 다행히 별일 없이 넘어갔다"고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또다른 대표작 ≪화두≫에 대해서는 "소련 붕괴는 나에게 4ㆍ19 수준의 사건이었다"면서 "오랫동안 할말이 없어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 '침묵의 시대'를 보내고 있었는데,소련 붕괴라는 큰 사건이 '꽝'하고 내 등을 떠밀더니 이야기가 나오더라"고 고백했다.
그는 "대학생 시절 강의실에서 나와 먼지구덩이에 파묻혀 있던 이론서 등을 뒤적인 일이 결국 ≪화두≫의 소재가 되더라"면서 "왜 그때 대학 졸업장을 그리 헐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고 대학을 중퇴한 과거를 회상했다. 2001년 서울예술대 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옛날 책을 되풀이해 읽는 등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최씨는 소설집 한 권 분량의 원고뭉치를 가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내 머리 속에서는 언제나 정치와 언어예술이 얽혀 있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미학적"이라면서 "이번 원고는 전위적인 취향을 마음껏 발휘한 글이자 언어예술가로서 쓴 순수하고 심미적인 작품인데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소설집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