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무척 답답한 모양이다. "중소기업 대출 늘려라","시중금리 내려가도록 조치하라","수출ㆍ수입기업에 외화를 공급하라"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중은행과 시장에 대해 '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대통령이 이런다고 시장이 움직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시중 금리를 내리려면 한국은행이 은행채나 양도성예금증서(CD) 카드채 등을 시장에서 마구 사들이면 된다. 시장에 유동성이 충분한데 자금 경색 현상으로 돈이 돌고 있지 않다면 더 많은 돈을 투입하는 게 방법이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필연적으로 시장 기능을 왜곡시키고 만다. 인위적으로 채권금리를 끌어내리는 것이어서 '피하주사(皮下注射)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시중금리가 내려간다 한들 회사채 금리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의 신용 문제로 인해 금융사들이 회사채를 외면하고 있어서다. 한은이 유동성 공급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소기업 대출이 안 된다면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을 통해 대출을 크게 늘려주거나 기업들의 회사채를 사주면 된다. 그것도 낮은 금리로.

그런데 그런 돈들은 우량 기업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정작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혜택을 본다는 건 쉽지 않다.

중소기업은 물론 건설사 중소조선사들의 자금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대주단 협약이나 패스트 트랙(신속지원)을 통해서 서둘러 자금을 지원하라고 한다.

하지만 은행들은 고민이 많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는 어지간한 기업들이 순식간에 쓰러져 판가름하기가 쉬웠지만 지금은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기업들은 "유동성을 지원해주면 쉽게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실적은 경기가 좋았을 때 얘기다. 은행들은 기업이 웬만큼 건강하지 않고선 앞으로 닥칠 불황을 견뎌내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은행의 기업지원프로그램에는 들어오지 않은 채 정부의 '일괄지원 조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이 다그친다고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정재형 경제부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