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정부의 전방위 유동성 공급 조치에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시중금리 인하 폭은 여전히 더디고, 2금융권이나 기업들은 돈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아궁이에 계속 불을 지피고 있지만 온기가 아랫목에서 윗목까지 퍼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두 달 동안 20조원 공급

한은과 정부가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시중에 공급했거나 공급하겠다고 밝힌 자금은 20조원이 넘는다.

먼저 한은은 지난달 24일에 환매조건부(RP) 방식으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을 대상으로 2조원을 푼 데 이어 31일에도 RP 매입을 통해 1조원을 공급했다.

앞서 같은 달 23일에는 통안증권 중도환매를 통해 7천억 원을 투입했다.

한은은 또 9·11 테러가 발생했던 2001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중소기업에 저리로 공급하는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기존의 6조 5천억 원에서 9조 원으로 2조 5천억 원 늘렸다.

이달 들어서도 은행채를 포함해 1조 원(11일)을 RP방식으로 공급했고 19일에는 1조 원어치 국채를 단순 매입했으며 오는 21일에는 RP방식으로 2조 원을 공급할 예정이다.

한은은 이와 함께 지난달 9일부터 한달 동안 기준금리를 5.25%에서 4.00%로 1.25%포인트 인하했다.

한은은 추가로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 펀드 조성을 추진 중이다.

이 펀드가 조성되면 신용등급 BBB+ 이상의 우량 채권 뿐 아니라 그 이하 등급의 채권, 건설사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국공채 등도 사들일 예정이다.

◇ 유동성 공급 약효는 `미미'

그러나 이런 조치들의 약효가 잘 듣지않고 있다.

3개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이달 들어 0.48%포인트, 3개월 은행채 금리도 이 기간 0.81%포인트 떨어졌지만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보폭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3개월 기업어음(CP) 금리도 이달 0.02%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으며 회사채 3년물 금리는 10월 8.13%에서 19일 현재 8.68%로 오히려 올랐다.

은행 관계자는 "최근 은행채 발행 여건이 나아지면서 은행채 금리가 떨어지고 있지만 국고채와 은행채 금리 격차가 여전히 크다"며 "최소한 격차가 0.50% 포인트 이내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지난달 은행 예금에 22조 원 가량이 몰리고 후순위채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은행권으로 시중자금이 몰리고 있어 유동성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2금융권의 경우 조달금리가 고공행진을 하는 등 자금경색이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다.

11월 들어 19일까지 신용카드사들이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1천600억 원으로 지난달 6천400억 원의 4분의 1에 그쳤다.

지난달 카드채 발행 규모도 전월보다 25.6% 줄었다.

캐피탈사(할부금융.리스)의 채권 발행 규모는 이 기간 600억 원에 그쳤다.

캐피탈사의 채권 발행 규모는 지난 9월에 7천398억 원에서 지난달 1천450억 원으로 급감했으며 이달 들어서는 채권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여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반기에는 기관투자자 수요가 많았지만 9월 리먼 사태 이후 신용경색이 심화하면서 기관 수요가 끊겼다"고 말했다.

여전사 채권금리는 8%대로 여전히 높다.

대우캐피탈은 지난 11일 1년 만기 회사채를 8.97% 금리로 발행했고 삼성카드는 18일 18개월 만기 회사채를 8.63%의 금리를 발행했다.

여전사가 이달 들어 발행한 채권의 금리는 8.14~8.97%로 올해 4월에 비해 6개월 만에 2~3% 급등했다.

◇추가 대책 나와야

각종 대책에도 시중 자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근본 원인은 시장의 불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리먼 사태 이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곳에는 돈이 가지 않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유수의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투자자들이 위험자산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건설사 관련 회사채, 여신전문기관 등의 채권 금리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내리고 정부가 밝힌 채권안정펀드를 하루빨리 조성하는 등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대 신인석 교수는 "한은이 이달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더 내려야 할 것"이라며 "시장심리를 안정시키려면 통화정책 이외에 채권안정펀드 등 미시적인 정책들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권안정펀드의 정확한 윤곽도 빨리 드러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3일 금융위가 자금조달 방안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채권시장 안정 펀드 조성 계획을 발표하자 은행 등이 국채나 회사채를 대거 팔아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채권금리가 요동쳤었다.

LG경제연구소 정성택 선임연구원도 "채권안정펀드가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자금이 없는 은행이나 보험사에 펀드 조성 자금을 내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