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직접지원 여부 놓고 미국 등 각국 논란
감원.긴축.경쟁.통폐합.보호무역 확산 전망


"금융산업 다음은 자동차다."

금융위기가 촉발한 경제지형 `빅뱅'의 충격이 제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자동차 산업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경제위기에 앞서 이미 쇠락 조짐이 완연했던 미국의 `빅3' 제네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는 "지원이 없으면 재앙"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정부에 손을 내밀고 있는 `처연'한 모습이다.

그러나 미 정부의 구제금융이 단행된다 해도 이들의 회생은커녕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리란 우려가 적지 않다.

또 미 정부의 지원은 유럽연합(EU) 등 각국의 `대응' 지원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아 `시장 실패'가 몰고올 부정적 파급효과와 각 업체가 떠안게 될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 美업계 지원 호소 불구, 의회 등 반응 `냉담' = 미국의 `빅3' 최고경영자들은 18일 상원금융위원회에 출석, 정부지원의 당위성을 역설했으나 의회와 정부의 반응은 차갑다.

GM의 릭 왜고너 회장은 자동차업계 도산시 1년 내에 300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앞으로 3년간 개인소득이 1천500억달러 줄게 되며 정부 세수도 1천560억달러나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라이슬러의 로버트 나델리 최고경영자는 자동차 업계의 도산이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논리적인(?) 협박'까지 제기하며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업계의 호소에도 불구, 개별 산업에 대한 세금 지원에 상당수 의원들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 또한 기존 7천억달러 구제금융 자금을 전용해 자동차산업을 지원하는 데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수 의원들 역시 자동차업계 스스로의 경쟁력 부족이 오늘의 위기를 불렀다는 인식에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 마이크 엔지 의원은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금융위기로 인한 것이 아니라며 "비효율적인 생산시스템과 퍼주기식의 노사합의가 미 자동차산업을 경쟁열위로 만든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러나 자동차노조의 정치적 지원을 받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과 민주당 수뇌부는 이들을 비난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신정부 관계자들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 문제를 매듭지어주기를 바라고 있으나 현정부 역시 애써 부담을 떠안을 이유가 없다.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의 해리 리드 원내대표는 19일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자금 가운데 250억 달러를 미국 자동차 업계를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법안에 대한 표결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양 측의 논란과 힘겨루기로 타결점을 찾기 쉽지 않은데다 강행해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이제 공이 백악관으로 넘어갔다며 부시 정부를 압박한 반면 공화당 측은 긴급 구제금융 자금이 아니라 의회가 지난 9월 승인한 250억달러의 '클린카' 지원 프로그램에서 자금을 전용해 자동차 업계를 도울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이 추후 이 문제를 다시 추진할 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일단 '빅3'에 대한 긴급 구제안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 EU 등 "美 지원 좌시 안한다" = 미국의 자동차산업 지원이 각국의 연쇄 지원을 야기, 보호무역 분위기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경제를 더욱 늪으로 빠뜨릴 악재인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5개국) 재무장관 회의 의장인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18일 미국이 자금을 투입한다면 자신들도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혔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미국의 대응을 주시하며 지원여부를 결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GM의 유럽 자회사인 오펠은 파산시 유동성 위기 대처를 위해 독일 정부에 10억유로(미화 약 12억7천만달러)의 신용보증을 요청한 상태이며 영국의 자동차제조딜러협회(SMMT) 역시 17일 정부에 지원을 촉구했다.

호주 정부 역시 이미 6조원에 가까운 자금 지원 등 정책을 취했음에도 업계가 추가지원을 요구하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 보호무역 확산..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듯 = 보호무역 주의가 확산될 경우 각 업체간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규모의 경제' 논리가 위력을 발휘하게 돼 우리 업계로서도 더욱 험난한 환경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980년대 영국의 레이놀드의 경우 정부로부터 무려 165억달러의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정상화를 이루지 못한 채 파산, 보유한 브랜드인 `재규어', `랜드로버', `미니' 등을 분할 매각하는 비운을 맞았다.

정부의 거액 지원도 경영부실과 노사분규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체질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업체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확보 노력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지원도 별 의미가 없음을 말해준다.

프랑스 르노의 경우 1980년대 자금난을 겪을 당시 정부로부터 약 7조원에 이르는 자금지원을 받은 뒤 특단의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이루며 회생에 성공한 선례가 있다.

세계 자동차 업체의 생존 경쟁 전쟁은 이미 불붙었다는 지적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내년 임원임금 삭감을 결정하고 미 미시시피 공장의 가동도 연기하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섰으며, 볼보 역시 지난 9월과 이달 11일 총 4천명에 이르는 감원을 결정하는 등 세계 자동차업계는 군살빼기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서울.워싱턴.베를린=연합뉴스) jb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