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주가 일제히 급락세를 보이면서 지수 하락을 주도하는 모습이다. 20일 증시에서는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가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진 것을 비롯해 신한지주(-9.75%) 우리금융(-10.62%) 기업은행(-14.29%) 등 시중 주요 은행의 주가가 일제히 큰의 하락세를 보였다. 전일 뉴욕 증시의 폭락이 주된 원인으로 보이지만, 은행 내부적으로도 주가를 밀어 올릴만한 재료가 없다.

한때 전 업종 가운데 가장 덩치(시가총액)가 컸던 금융주는 은행 등의 부진으로 인해 주도주는 커녕, 고비때마다 지수의 발목을 잡는 '문제아'로 전락했다. "은행ㆍ건설주가 받쳐줘야 증시 반등이 가능하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추락하는 은행주가 언제쯤 날개를 펼 수 있을까.

◆위험요인은 산적해

미국에서 불거진 신용위기는 이제 전세계 실물경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선(戰線)이 월스트리트(금융시장)에서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로 넘어온 것이다. 세계 각국이 금리인하와 구제금융 등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에 대한 우려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신용경색으로 돈이 안 도는 게 문제로 부각되더니 키코(KIKO) 사태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수차례 소극적인 중소기업 대출을 문제삼는 등 정부도 은행을 압박해 우려를 키우는 꼴이 됐다.

①유동성 부족=리먼 브라더스 부도 이후 국내 은행은 달러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작년 말 900원대에서 최근 1400원을 넘나들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정부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최근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지급보증도 하고 있지만, 외국인의 주식 매도 등 신용경색이 해소되기 전까지 유동성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달러화 뿐 아니라 원화 유동성도 빡빡한 모습이다. 한국은행이 사상 유례없이 단기간에 금리를 끌어 내리고 있지만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 자금확보를 위해 은행들은 높은 예금금리를 유지하면서 고리의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다. 조달금리가 상승은 예대마진 악화로 이어저 은행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이 대통령은 대출금리가 너무 높다고 연일 은행을 질타하고 있어 마진악화가 당분간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②키코 손실 증가=태산LCD가 키코 등 통화옵션 거래를 통해 영업이익을 내고도 무너지자 환헤지 상품을 판 은행에 충격을 주고 있다. 태산LCD와 거래한 하나금융지주는 충담금 적립으로 지난 3분기 733억원의 대규모 순손실이 났다. 금융권에서는 제2의 태산LCD 사태를 우려한다.

굿모닝신한증권에 따르면 신한은행, 외환은행이 특히 키코 상품을 많이 팔았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외환은행은 195개 회사와 모두 1조5134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있다. 신한은행도 107개 회사와 1조2972억원 규모의 키코 계약을 맺었다. 당시 원/달러 환율 1081원으로 가정하면 각각 1683억원과 1770억원의 평가손실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③PFㆍ중소기업 대출 부실=잠재적인 위험 요인으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은행의 부동산 PF 부실이다. 미분양으로 건설사들이 줄줄이 부도 위험에 직면한 탓이다. 은행들이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향후 발생할 수익금을 담보로 건설사들에 빌려준 돈은 9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홍진표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건설사와 PF 대출에 대한 부도율을 아시아 경제위기때와 비슷한 20%로 가정하고 은행의 예상 손실률을 28.6%로 치면 5조4000억원 가량이 건설부동산 관련 손실로 잡힌다"고 했다. 이는 은행들의 자산 대비 7.5% 수준이다.

여기에 313조원에 달하는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도 부실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홍 연구원은 "손실률 60%와 부도율 2.7%를 가정할 경우 5조1000억원 가량의 손실이 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부실 가능성은 낮지만 주택담보대출도 최근 아파트 가격 하락을 보면 마냥 마음 놓고있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주가가 싼 것 만도 아니다"

이 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은행 주가가 싸다는 데 대체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진표 연구원은 "미국 은행이 한국 은행보다 25%포인트 낮은 ROE(자기자본순이익률)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30% 가량 더 비싸다"고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은행들도 비슷한 위험 요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미국 은행 대비 주가가 낮은 수준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주식시장은 정상적인 밸류에이션 평가가 안 되는 만큼 PBR로 주가가 싸다는 논리를 들고 나와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증권사 은행 담당 연구원은 "악재가 너무 많아 한동안 분석보고서를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싸다는 논리로 사라는 건 요즘같은 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논리"라고 했다.

이 연구원은 "주가순자산비율(PBR) 0.5배 수준의 은행 주가를 보면 싸다고 안 할 사람이 없다"면서 "그러나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 국내 은행주 PBR이 0.2배까지 떨어졌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