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혼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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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다 이루기 위해 악마에게 혼을 판다. 그러나 욕망이 헛되다는 것을 죽음 직전에야 깨닫는다. 사실 '혼'은 인생을 대변하는 화두인데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단어인 것 같다.
혼이 중요한 건 그것이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혼이 실리지 않은 글이 어떻게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으며,혼이 없이 입술로만 하는 연설이 어찌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혼이 없이 몸으로만 하는 배우는 결코 관객을 전율시킬 수 없고,혼이 없이 지식만 전달하는 선생님은 학생의 사표가 될리 만무하다.
혼이 담긴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 법이어서,가슴의 혼으로 얘기하는 부모의 충고는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상인만 해도 그렇다. 돈만 따진다면 장사꾼에 불과하나,온 정성을 담아 인정을 나누고 신뢰를 쌓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바로 거상(巨商)일 게다.
혼이 깃든 지도자들은 나라를 구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호소력있는 표정 하나를 짓기 위해 밤을 지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연설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까닭을 알 만하다. '피와 땀과 눈물밖에 바칠 것이 없다'는 처칠의 호소가 국민들에게 먹혀든 것도 그의 깊은 고뇌에서 나온 진정성 덕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내외적으로 난관에 봉착해서인지 '혼'에 대한 갈망이 더욱 목마르다. 비단 정치인뿐만이 아닌 사회 모든 분야의 지도층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 기다려진다.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는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고 하는데,혼을 빼앗긴 채 살았다고 후회하기 전에 모두가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천자칼럼의 집필을 끝내면서 나 자신 누군가에게 혼을 저당잡히고 살지 않았는지 이제서야 돌아보게 된다. 혼이 담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자괴감만 든다. '어영부영 지내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큰 공명이 되어 가슴을 때린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혼이 중요한 건 그것이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혼이 실리지 않은 글이 어떻게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으며,혼이 없이 입술로만 하는 연설이 어찌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혼이 없이 몸으로만 하는 배우는 결코 관객을 전율시킬 수 없고,혼이 없이 지식만 전달하는 선생님은 학생의 사표가 될리 만무하다.
혼이 담긴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 법이어서,가슴의 혼으로 얘기하는 부모의 충고는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상인만 해도 그렇다. 돈만 따진다면 장사꾼에 불과하나,온 정성을 담아 인정을 나누고 신뢰를 쌓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바로 거상(巨商)일 게다.
혼이 깃든 지도자들은 나라를 구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호소력있는 표정 하나를 짓기 위해 밤을 지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연설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까닭을 알 만하다. '피와 땀과 눈물밖에 바칠 것이 없다'는 처칠의 호소가 국민들에게 먹혀든 것도 그의 깊은 고뇌에서 나온 진정성 덕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내외적으로 난관에 봉착해서인지 '혼'에 대한 갈망이 더욱 목마르다. 비단 정치인뿐만이 아닌 사회 모든 분야의 지도층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 기다려진다.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는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고 하는데,혼을 빼앗긴 채 살았다고 후회하기 전에 모두가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천자칼럼의 집필을 끝내면서 나 자신 누군가에게 혼을 저당잡히고 살지 않았는지 이제서야 돌아보게 된다. 혼이 담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자괴감만 든다. '어영부영 지내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큰 공명이 되어 가슴을 때린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