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문화街] 영화, 그리고 초겨울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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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두꺼운 옷들을 옷장에서 꺼냈다. 찬물에 세수하는 것이 꺼려지고,길거리 찜통에 있는 호빵과 포장마차의 어묵 국물에 눈이 간다. 깜짝 추위가 꽤 매서운 걸 보니 올 겨울도 만만치 않을 듯싶다. 이제부터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추위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찬바람을 맞으며 야외 촬영을 해야 하고,눈이 오면 촬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스태프들은 두꺼운 파카 속에 손난로와 핫팩으로 무장한다지만 야외 촬영을 한번 겪어본 사람이라면 엄동설한이 무서워진다. 이럴 때 여름 신을 찍어야 하는 배우들이라면 가벼운 옷차림으로 몇 시간을 떨어야 한다.
# 9월 초에 개봉한 '맘마미아'가 지난 일요일까지 45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맘마미아'는 11주간 극장에 걸려 있고,이런 분위기라면 연말까지 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개봉 1주일 만에 극장에서 떨어지는 영화가 수두룩한 요즘 '맘마미아'처럼 롱런하는 영화가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중년 여성 관객들이 꾸준히 '맘마미아'를 보러 오고,몇 번씩 다시 보는 관객도 있다. 필자도 개봉 이후 세 번을 더 봤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메릴 스트립이 'The Winner takes It All'을 부르는 모습이 떠오르며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올라오시면 같이 '맘마미아'를 보러 가야겠다.
# 흥행 하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한국 최초로 100만명의 관객을 모았던 '서편제'의 극장 간판 이야기다. '서편제'는 1993년 4월10일 단성사에서 단관 개봉했다. 그리고 10월30일에 100만명 기록을 세웠다. 무려 6개월20일 만의 기록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3~4일 만에 100만명(전국 관객)을 달성하는 요즘이지만 당시 100만명은 현재의 1000만명과 맞먹는 꿈의 숫자였다. '서편제'는 할리우드 외화도 제쳤다. 오래 상영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극장 간판 색이 바랜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 극장들은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의 극장 간판을 페인트로 직접 그렸다. '서편제'도 마찬가지였는데,여름의 강한 햇빛과 장마를 거치면서 간판의 빛이 바랬고,다시 그려 걸 수밖에 없었다. '서편제'는 너무 오래 한 극장에서 상영해 극장 간판을 두 번 그린 최초의 영화이기도 했다. 옛날 극장 이야기를 하니 한 가지 더 떠오르는 것이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 개봉날 아침이면 제작자와 감독,배우가 극장 앞 카페에 모여 앉아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며 매표구를 바라보곤 했다. 아침부터 관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면 축하주를 마셨고,줄이 없으면 위로주를 마셨다. 또 매진을 기록하면 만원사례 간판을 달고 봉투에 1만원을 넣어 극장 및 영화 관계자에게 돌리기도 했다. 인간 냄새가 나는 시절이었다고 할까? 날이 추워지니 이런 저런 추억이 떠오른다.
/이원 영화 칼럼니스트
# 9월 초에 개봉한 '맘마미아'가 지난 일요일까지 45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맘마미아'는 11주간 극장에 걸려 있고,이런 분위기라면 연말까지 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개봉 1주일 만에 극장에서 떨어지는 영화가 수두룩한 요즘 '맘마미아'처럼 롱런하는 영화가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중년 여성 관객들이 꾸준히 '맘마미아'를 보러 오고,몇 번씩 다시 보는 관객도 있다. 필자도 개봉 이후 세 번을 더 봤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메릴 스트립이 'The Winner takes It All'을 부르는 모습이 떠오르며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올라오시면 같이 '맘마미아'를 보러 가야겠다.
# 흥행 하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한국 최초로 100만명의 관객을 모았던 '서편제'의 극장 간판 이야기다. '서편제'는 1993년 4월10일 단성사에서 단관 개봉했다. 그리고 10월30일에 100만명 기록을 세웠다. 무려 6개월20일 만의 기록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3~4일 만에 100만명(전국 관객)을 달성하는 요즘이지만 당시 100만명은 현재의 1000만명과 맞먹는 꿈의 숫자였다. '서편제'는 할리우드 외화도 제쳤다. 오래 상영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극장 간판 색이 바랜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 극장들은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의 극장 간판을 페인트로 직접 그렸다. '서편제'도 마찬가지였는데,여름의 강한 햇빛과 장마를 거치면서 간판의 빛이 바랬고,다시 그려 걸 수밖에 없었다. '서편제'는 너무 오래 한 극장에서 상영해 극장 간판을 두 번 그린 최초의 영화이기도 했다. 옛날 극장 이야기를 하니 한 가지 더 떠오르는 것이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 개봉날 아침이면 제작자와 감독,배우가 극장 앞 카페에 모여 앉아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며 매표구를 바라보곤 했다. 아침부터 관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면 축하주를 마셨고,줄이 없으면 위로주를 마셨다. 또 매진을 기록하면 만원사례 간판을 달고 봉투에 1만원을 넣어 극장 및 영화 관계자에게 돌리기도 했다. 인간 냄새가 나는 시절이었다고 할까? 날이 추워지니 이런 저런 추억이 떠오른다.
/이원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