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해로운 걸 알면서도 과식 또 과식, 비만은 '정신 질환' 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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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고프면 스트레스…포만감에 내성 붙어 더 많이 먹게 돼
약물 의존성 정신질환과 비슷…우울증 동반땐 상담치료해야
27세의 전문직 미혼 여성인 A씨가 심한 불면을 호소하며 스트레스 클리닉을 찾아왔다. 그는 수면제 남용으로 약물 내성이 생겨 이젠 약을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일상의 즐거운 일에도,직업적 성취에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사소한 사건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짜증만 늘었다고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기피했다. 행복에 대한 불감증 또는 내성이 생긴 상태였다. 식사는 거의 하지 않고 초콜릿이나 사탕 등에 의존해 에너지를 얻었고 당분을 섭취할 때 우울한 기분이 좋아져 계속 찾게 되는 '탄수화물 갈망현상'(carbohydrate craving)을 보였다. 담배도 하루에 두 갑 이상 피웠다. 수개월간 체중이 10㎏가량 증가해 복부비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진단 결과 우울증도 보였다. 약물 및 상담치료로 우울증은 호전됐고 탄수화물 갈망현상도 줄었다. 운동요법도 실천해 현재 정상적인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비만은 단순한 내분비장애가 아니라 정신질환,뇌질환,음식중독 또는 스트레스의 합병증일 수 있다. 향후 개정될 정신질환 진단체계에서 모든 비만은 아니더라도 비만의 일부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만든 진단통계편람 개정 4판(DSM-Ⅳ)의 약물중독(약물 의존성 질환) 진단 기준을 보면 이들 환자가 약물에 반응하는 행동양상처럼 비만 환자도 음식에 대해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약물중독자는 몸에 해로운 약물을 잘 받아들이고 그 양이 점차 증가함에도 반응을 느끼지 못하는 약물내성(tolerance)을 보인다. 비만한 사람도 약물중독자처럼 포만감을 채우기 위해 음식의 요구량이 점차 늘어간다. 약물을 끊을 때 나타나는 금단증상처럼 다이어트를 하면 불쾌감이나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이 밖에 원하는 이상의 음식을 섭취하게 되는 것,과식을 피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하지만 끝내 실패하는 것,비만 때문에 사회적 활동이 위축되는 것,비만이 향후 심각한 신체적 심리적 결과를 야기할 것임을 알면서도 과식을 지속하는 것 등의 행동양상이 약물중독과 닮았다. 이런 관점에서 비만은 '음식 중독'(food addiction) 또는 '음식에 대한 과도한 갈망'이다.
비만은 뇌질환이기도 하다. 마약중독 등 약물의존질환은 '넘치면 비우고 모자라면 채우는' 뇌의 자율적인 보상기전에 고장이 난 것과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중추신경흥분제(마약도 이에 해당)를 투여하면 보상시스템이 활성화돼 초기엔 식욕이 줄어드는 효과를 보이지만 나중에는 보상기전에 문제가 생겨 약물내성과 금단증상이 나타나며 식욕도 더욱 증가하는 현상을 초래한다. 같은 맥락에서 식욕 및 포만감 조절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뇌내 시상하부의 보상기전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비만이 온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증거는 비만세포에서 분비되는 렙틴(leptin)이란 물질이다. 렙틴은 뇌 회로에 작용해 체지방량이 증가하면 음식을 섭취할 때 느끼는 정신적 쾌감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포만감 자극에 대한 반응을 강화해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를 줄이고 식사행동을 멈추게 한다. 반대로 체중 저하로 렙틴 수치가 줄어들면 음식 섭취 시 느끼는 쾌감을 올리려하고 포만감 자극에 대한 반응을 약화시켜 식사행동을 증가시키려는 양상을 띤다. 이는 다이어트 때 일어나는 '요요현상'을 설명하는 단서가 되고 렙틴이 제 역할을 못할 때(렙틴에 대한 저항성 형성) 비만이 초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만은 스트레스성 질환의 하나로 우울증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기존의 약물중독이 우울증과 같은 다른 정신질환과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음식중독의 하나인 비만도 마찬가지다. 비만이 우울증과 겹쳐있다면 더 많은 신체질환을 부르는 위험인자로 작용하게 된다.
필자가 서울대병원 강남센터를 찾은 15∼85세의 여성 46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울증과 복부비만 및 높은 혈당수치 간에는 유의미한 비례관계가 있었다. 심리적 건강과 내분비적 문제가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건 이미 많은 연구에서 입증되고 있으나 아직은 통합적인 치료에 적용되지 못해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문제가 결부돼 있는 비만 환자는 약물·상담·운동치료를 통해 정상 체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
약물 의존성 정신질환과 비슷…우울증 동반땐 상담치료해야
27세의 전문직 미혼 여성인 A씨가 심한 불면을 호소하며 스트레스 클리닉을 찾아왔다. 그는 수면제 남용으로 약물 내성이 생겨 이젠 약을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일상의 즐거운 일에도,직업적 성취에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사소한 사건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짜증만 늘었다고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기피했다. 행복에 대한 불감증 또는 내성이 생긴 상태였다. 식사는 거의 하지 않고 초콜릿이나 사탕 등에 의존해 에너지를 얻었고 당분을 섭취할 때 우울한 기분이 좋아져 계속 찾게 되는 '탄수화물 갈망현상'(carbohydrate craving)을 보였다. 담배도 하루에 두 갑 이상 피웠다. 수개월간 체중이 10㎏가량 증가해 복부비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진단 결과 우울증도 보였다. 약물 및 상담치료로 우울증은 호전됐고 탄수화물 갈망현상도 줄었다. 운동요법도 실천해 현재 정상적인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비만은 단순한 내분비장애가 아니라 정신질환,뇌질환,음식중독 또는 스트레스의 합병증일 수 있다. 향후 개정될 정신질환 진단체계에서 모든 비만은 아니더라도 비만의 일부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만든 진단통계편람 개정 4판(DSM-Ⅳ)의 약물중독(약물 의존성 질환) 진단 기준을 보면 이들 환자가 약물에 반응하는 행동양상처럼 비만 환자도 음식에 대해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약물중독자는 몸에 해로운 약물을 잘 받아들이고 그 양이 점차 증가함에도 반응을 느끼지 못하는 약물내성(tolerance)을 보인다. 비만한 사람도 약물중독자처럼 포만감을 채우기 위해 음식의 요구량이 점차 늘어간다. 약물을 끊을 때 나타나는 금단증상처럼 다이어트를 하면 불쾌감이나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이 밖에 원하는 이상의 음식을 섭취하게 되는 것,과식을 피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하지만 끝내 실패하는 것,비만 때문에 사회적 활동이 위축되는 것,비만이 향후 심각한 신체적 심리적 결과를 야기할 것임을 알면서도 과식을 지속하는 것 등의 행동양상이 약물중독과 닮았다. 이런 관점에서 비만은 '음식 중독'(food addiction) 또는 '음식에 대한 과도한 갈망'이다.
비만은 뇌질환이기도 하다. 마약중독 등 약물의존질환은 '넘치면 비우고 모자라면 채우는' 뇌의 자율적인 보상기전에 고장이 난 것과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중추신경흥분제(마약도 이에 해당)를 투여하면 보상시스템이 활성화돼 초기엔 식욕이 줄어드는 효과를 보이지만 나중에는 보상기전에 문제가 생겨 약물내성과 금단증상이 나타나며 식욕도 더욱 증가하는 현상을 초래한다. 같은 맥락에서 식욕 및 포만감 조절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뇌내 시상하부의 보상기전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비만이 온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증거는 비만세포에서 분비되는 렙틴(leptin)이란 물질이다. 렙틴은 뇌 회로에 작용해 체지방량이 증가하면 음식을 섭취할 때 느끼는 정신적 쾌감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포만감 자극에 대한 반응을 강화해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를 줄이고 식사행동을 멈추게 한다. 반대로 체중 저하로 렙틴 수치가 줄어들면 음식 섭취 시 느끼는 쾌감을 올리려하고 포만감 자극에 대한 반응을 약화시켜 식사행동을 증가시키려는 양상을 띤다. 이는 다이어트 때 일어나는 '요요현상'을 설명하는 단서가 되고 렙틴이 제 역할을 못할 때(렙틴에 대한 저항성 형성) 비만이 초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만은 스트레스성 질환의 하나로 우울증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기존의 약물중독이 우울증과 같은 다른 정신질환과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음식중독의 하나인 비만도 마찬가지다. 비만이 우울증과 겹쳐있다면 더 많은 신체질환을 부르는 위험인자로 작용하게 된다.
필자가 서울대병원 강남센터를 찾은 15∼85세의 여성 46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울증과 복부비만 및 높은 혈당수치 간에는 유의미한 비례관계가 있었다. 심리적 건강과 내분비적 문제가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건 이미 많은 연구에서 입증되고 있으나 아직은 통합적인 치료에 적용되지 못해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문제가 결부돼 있는 비만 환자는 약물·상담·운동치료를 통해 정상 체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