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 소설가 >

이십 몇 억짜리 부자라고 목에 힘주고 사는 사랑하는 친구여,지금 내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말기 바란다. 자네는 기껏 50평 내외의 시멘트로 된 아파트 공간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나는 그 몇 천만 배나 되는 천연의 무한 시공을 가지고 있다. 내 그대에게,내가 그것들을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으며,그것들을 관리하는 권력자로서의 즐거움이 어떠한지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나는 십삼년 전 서울을 버리고 장흥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내 시야가 미치는 곳에 있는 모든 땅과 바다와 하늘을 모두 사버렸다.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나를 이곳으로 이사 오도록 유혹한 한 도깨비한테 내 영혼을 저당 잡히고 천문학적으로도 계산하기 힘든 돈을 꾸어서 이 땅과 바다와 하늘을 관리하는 신들에게서 사버린 것이다. 나는 내가 소유한 땅과 바다와 하늘을 관리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떤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내가 하는 일은 응접실 커튼을 젖히고 내 땅 내 바다 내 하늘에 해가 제때 어김없이 뜨는지 살피는 것이다.

아침이 열림에는 확실한 순서가 있다. 제일 먼저 밝아지는 것은 하늘이고 다음이 바다이고 그 다음이 땅이다. 하늘이 세상의 잠을 깨우는 것이다. 세상이 잠에서 깨어나는 모양새는 화려하고 장엄하다. 잠을 깨고 있는 바다와 섬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숲은,수묵화의 귀재가 정교하게 그려놓은 듯싶다. 그 수묵화를 미처 다 감상하기도 전에 거무스레한 나무와 모래밭 너머의 하늘과 바다가 금방 은빛에서 다른 빛깔로 바뀐다. 마치 금빛과 은빛을 섞어놓은 듯한 거대한 공단을 질펀하게 깔아놓은 듯싶다. 이것은 총천연색 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감상하면서 나는 내 영혼을 도깨비에게 저당 잡히고 이 땅과 바다와 하늘을 사버린 것을 내 일생 최대 최고의 행운으로 생각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것을 나 혼자서만 즐기고 있는 것이 아깝고 짠하다. 자네에게 전화로라도 이 장엄한 아침 광경을 묘사해주면 자네는 질투 때문에 병이 날 것이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두고 싶지만 참는다. 사진기를 꺼내고 어쩌고 하는 사이에 이 장면을 놓칠 것 같으므로.

찬란한 아침의 장엄한 광경을 즐기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공중재주를 부리며 춤을 춘다. 나는 심호흡을 한다. 찬란한 아침을 들이마신다. 늙어가고 있는 나는 아침에게서 기를 받는다. 바다와 하늘에 칠해진 황금색이 약간 묽어지는 것 같더니 이내 고흥반도 위로 새빨간 홍시 같은 것이 머리를 천천히 내민다. 해다. 빨간 원판 같은 것이 두둥실 솟아올랐다. 그 원판은 수런거린다. 해의 신(神)에게 말한다. 내 땅 내 바다 내 하늘 세상을 어김없이 순환해주어 고맙다고.맞은편의 고흥반도에서 내가 사는 장흥 연안 쪽으로 빨간 불기둥 하나가 줄기차게 뻗어온다. 불기둥은 꿈틀거린다. 그 빨간 꿈틀거림 속으로 조그마한 배 한 척이 달려가고 있다. 아침 고기잡이배다.

내 토굴 앞마당과 주변의 산들은 샛노란 치자색으로 물이 든다. 마른 잔디에 맺혀 있는 이슬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그 보석들을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은 안타까움을 억누른 채 아침체조를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내 땅 내 바다 내 하늘을 잘 관리하려면 건강해야 한다.

아침밥을 먹으러 가기 위해 나서다가 물고기 사료봉지를 집어 들고 연못으로 간다. 비단 잉어와 금붕어들이 내 앞으로 몰려든다. 어서와 밥 먹어라.나의 움직이는 꽃인 그들은 입을 벙긋거리며 밥을 먹는다. 고개를 드니,새벽녘까지 나눈 진한 사랑으로 인해 지친 흰 조각달이 서녘 하늘에서 비틀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