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프 하나 짜는데만 18개월
사각형 실크 위에 예술을 담다


'맥럭셔리'(대중 명품) 시대라고 하지만 이를 철저히 비켜가는 명품 브랜드들도 있다. 171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에르메스'가 그렇다. 에르메스는 매 시즌 3만여개에 이르는 아이템을 내놓고 있지만 하나하나 장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하기에 '명품 위의 명품'으로 칭송받는다. 여성들이 루이비통·샤넬·디올 등의 백을 가졌어도 800만~900만원에 달하는 에르메스 백을 '갖고 싶은 품목 리스트'에 올려놓고 동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에르메스의 DNA를 흠모하는 여성이라면 4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까레'로 위안을 삼곤 한다. '까레'는 프랑스어로 정사각형을 의미하는데,에르메스에선 '스카프'를 이렇게 부른다. 샹송 가수 제인 버킨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버킨백'과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즐겨 들었다는 '켈리백'만큼이나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아이템이다.

'까레'는 굳이 에르메스 로고를 확인하지 않아도 구별 가능하다. 다채롭고 풍부한 색채와 촘촘한 능직 실크,독창적인 디자인은 다른 브랜드들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에르메스 스카프만의 특징으로 꼽힌다. 지난 70년간 프랑스 리옹 지역에서 스카프 장인들이 생산해 낸 스카프는 1500여가지.가방만큼이나 장인들이 스카프를 제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디자인 개발에만 1~2년이 걸리고,에르메스 특유의 실크를 짜내는 것부터 스카프 가장자리를 손바느질로 마무리하는 18개월 동안 스카프 장인들은 28~45개 스크린판을 하나씩 제작해 실크 위에 찍어낸다.

그래서 '까레'는 '한 폭의 그림'으로 비유된다. 매년 정해지는 주제에 따라 90㎝짜리 사각형 실크 위에는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펼쳐진다. 지난해 주제는 '춤의 해',올해는 '인도의 해'.그 해 에르메스 디자인의 영감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제품이 '까레'다. 그래서 매년 '까레'를 수집하는 컬렉터들도 있다.

'까레'는 유명 예술가와의 협업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9월 한정판으로 출시된 현대 미술의 대가 조셉 앨버스의 '사각형에 대한 경외'라는 작품이 바로 그것.소더비 경매에서 3억원에 팔린 앨버스의 작품을 300만원짜리 실크 스카프로 간직할 수 있다.

또한 리옹 지방에 방문해야만 볼 수 있는 '까레' 프린팅 과정은 23일까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감상할 수 있다. 스카프 장인 두 명이 방한해 올해 선보인 '인디안 더스트'와 '레 꾸페'의 실크 프린팅을 시연한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