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보다는 마케팅 덕에 유행
가볍게 즐기는 '햇와인' 일뿐


"Le Beaujolais Nouveau est arrive(보졸레 누보가 왔다)."

또 1년이 지나 그때가 왔다.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올해는 20일) 자정 전 세계에서 동시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의 날'이다. 일부 백과사전에는 보르도와인을 '와인의 여왕',보졸레 누보를 '와인의 왕'이라고 자신있게 소개하고 있다. 최근 그 기세가 수그러들긴 했지만 도대체 어떤 와인이기에 이런 대접을 받을까?

보졸레 누보는 본래 프랑스 부르고뉴와 론에 걸쳐 있는 보졸레 지역에서 생산한 '햇 포도주(New wine)'를 말한다. 향이 풍부한 '가메(Gamey)' 품종의 포도를 9월에 수확해 약 두 달간의 짧은 숙성(일반 와인은 6개월 이상)을 거쳐 바로 상품화한다. 따라서 향이 신선하고 산미가 있어 와인 초보자들에게 권할 만하다는 평가가 많다. 가격 또한 2만원 안팎으로 저렴한 편이다. 현지 가격(2~3유로)을 생각하면 조금 화(?)가 나지만….

보졸레 와인 중에는 누보의 유명세에 밀려 자존심을 구기고 있는 '물랭 아방''모르공' 등 크뤼급 와인도 있고,누보보다는 품질이 좋고 장기 보관도 가능한 '보졸레 빌라쥐'급 와인도 있다. 하지만 이즈음 유통되는 대부분의 보졸레 와인은 누보이기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모두에게 나쁜 사람은 없듯이 보졸레 누보 또한 기호에 따라 훌륭한 와인일 수 있다. 특히 텁텁한 느낌의 타닌이 부담스러워 화이트 와인만 고집하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괜찮은 와인일 것이다. 하지만 '와인의 왕'이라든지 보졸레 누보를 모르면 와인을 모르는 것인 양 떠들어대는 상술에 휘둘리는 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다.

이러한 희대의 전 세계 마케팅 중심에는 네고시앙(포도를 구입해 와인을 제조·생산하는 사람) 조르주 뒤뵈프가 있다. 그는 1951년 시작된 보졸레라는 조그만 지역의 축제 와인을 1980년대에 이미 전 세계에 3000만병 이상 수출한 사업가다. 프랑스 정부도 1985년 이 와인의 판매 개시일을 11월 셋째 목요일로 못 박으면서 마케팅에 힘을 실어줬다. 여기에 한국에서도 보졸레 누보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1980년대 일본의 연말회식 문화가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는 과히 기분 좋지 않은 분석도 있다.

그렇다. 문제는 와인 자체가 아니다. 보졸레 누보는 그해 첫 와인으로서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즐긴다는 색다른 이벤트로 여기면 그만이다. 품질 좋고 더 저렴한 와인도 많은데 굳이 비싼 항공운송비까지 부담해가며 달려들 까닭은 없지 않겠는가.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