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誌, 투자위축 → 매출부진 → 장기침체 악순환 될수도

"지금 필요한 건 오직 현금뿐."

금융위기 한파에 기업들의 경영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고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11월22일자)가 보도했다.

1년 전만 해도 현금을 쌓아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현금을 쌓아두면 행동주의 주주들이 특별배당을 요구하거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회사를 압박했다. 또 1980년대 이후에는 가능한 한 회사를 '날씬하게' 만들어 핵심 분야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아웃소싱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또 회사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차입을 늘렸다.

하지만 기업들이 단기자금을 조달하던 하루짜리 기업어음(CP) 시장이 최근 망가지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탄탄한 대기업조차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현금을 확보하느라 난리다. 요즘에는 가능한 많은 현금을 장기간 확보해 두는 것이 기업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됐다.

회계사들은 연말 회계감사 보고서에 서명하기 전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입증할 더 많은 증거들을 요구할 태세다. 포천 500대 기업에 속한 대기업들도 투자자들로부터 지금처럼 자금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현재 갖고 있는 현금으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캐피털회사 세쿼이아는 자금을 투자한 신생 기업들에 즉각 현금이 창출되지 않는 사업 계획은 규모를 확 줄이라고 권했다. 인도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도 최근 간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현금 필요액과 사업계획을 철저히 다시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부품업체 관리도 '적시에(just in time)'보다는 '만약에(just in case)'가 더 중요해졌다.

반면 금융위기는 일부 현금방석에 앉아 있던 기업들에는 헐값에 다른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210억달러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나 머크 등 주요 제약회사,일본 기업 등이 대표적인 현금부자 기업들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신용경색 여파로 기업이 현금 확보에만 매달릴 경우 경제학자 케인스가 주장한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에 빠져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가계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긴축만 하고 돈을 안 쓰면 경제가 더 안 돌아가 스스로를 포함해 모두가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주간지는 "불황기에 기업의 성공과 실패는 어떤 비용을 줄였느냐가 아니라 어떤 비용을 줄이지 않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