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틀 연속 개입…예전과 달리 고강도 환율방어는 안할 듯

원·달러 환율이 이틀 연속 장중에 1500원 선을 돌파했다가 오후에 되밀렸다. 정부의 시장개입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시장개입이 강력한 방어선을 쳤다기보다는 '미세 조정'이라는 분석이 일고 있다. 정부의 환율 방어 의지나 능력 모두 예전만 못 하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외환은 가만히 놔둬야"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00원으로 거래를 시작해 장중 한때 1525원까지 급등했다. 전날 뉴욕 증시 폭락으로 외국인 주식 매도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오후 들어 국내 증시가 반등한 데다 정부가 '종가 관리' 차원의 시장개입에 나서 전날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종가는 전날보다 2원 내린 1495원이었다. 원·엔 환율은 100엔당 3원86전 오른 1575원84전에 마감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정부가 막판에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 환율을 1500원 아래로 끌어내렸지만 매도 규모는 크지 않았다. 수억달러에 불과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얘기다. 지난 7월 정부와 한국은행이 공개적으로 '시장개입'을 천명하며 한 달간 200억달러 이상 쏟아붓던 때와는 강도가 달랐다. 환율을 적극적으로 끌어내릴 의도가 없다는 것으로 시장에서는 읽혀졌다. 페루를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외환은 건드리면 안 된다. 가만히 놔둬야 한다"며 '환율 불개입 원칙'을 강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왜 달라졌나

정부가 고강도 환율 방어에 나서기 힘든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외환시장 개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요즘 환율이 급등하는 것은 국내 문제라기보다는 국제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외국인의 자금 이탈에서 비롯됐다. 외국인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국내 주식과 채권을 대거 처분하면서 환율이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화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통화도 대부분 같이 떨어지고 있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고 해서 환율 상승세가 꺾일 가능성은 낮다. 시장에 개입할수록 외국인의 자금 이탈만 도와주는 꼴이다.

다음으로 정부가 시장개입에 나설 '실탄'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은 2122억달러로 한 달 전보다 274억달러 감소했다. 정부와 한은이 최근 수출입금융에 160억달러를 지원하고 '달러 입찰'을 통해서도 이달에만 60억달러를 푼 것을 감안하면 외환보유액은 이미 2000억달러 밑으로 내려갔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은행과 기업에 얼마나 더 많은 달러를 공급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로 끌어 쓸 수 있는 300억달러는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매입하는 용도(환율 방어용)로 쓸 수가 없다. 시중은행들이 경쟁 입찰 방식의 통화 스와프를 통해 달러를 빌릴 수 있도록 그 용도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미세조정은 계속할 듯

그렇다고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아예 손을 뗀다고 보기는 어렵다. 환율이 계속 급등하면 수입업체와 내수기업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키코(KIKO) 등 통화옵션 상품에 얽혀 있는 수출기업들에 환율 상승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낸 학부모들의 고통도 외면하기 어렵다.

시장에서는 환율의 큰 흐름은 시장에 맡기되 지나친 급등을 막는 미세 조정 차원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이 전날 "지나친 외환시장 불안을 방치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외환시장에 섣불리 개입해봐야 효과도 없고 개입하기도 쉽지 않다"며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괜찮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외환시장의 쏠림현상을 막는 수준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