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수석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사회적 배려 없이 출산율 제고 불가능

양육의 기쁨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


출산율 때문에 난리다. 20대 출산율은 10년 전의 절반이고 가임여성 50%가 출산을 기피한다는 발표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매년 수백억원씩 출산장려금을 쏟아붓는데도 신생아가 늘기는커녕 줄어든다는 마당이다. 이대로 가면 출산율 1.20도 지켜내기 힘들지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낳기 싫어서가 아니라 키우기 힘들어서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의 사회 진출은 급증하는데 임신한 여성을 보는 직장 내 눈초리는 여전히 곱지 않다. 툭하면 야근이고,회식에 빠지면 그래 갖고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면박이 뒤따르는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은 없다. 사교육비 문제는 다음이다.

아이는 누가 낳으라고 낳는 게 아니다. 내 경우 결혼 전 아이를 안 낳겠다 작정했었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결혼 후 얼마 안돼 임신했다. 기쁘기는커녕 새 직장에서 덜컥 임신부터 했으니 숨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입덧이 심했다. 하루에 스무 번씩 토하면 하늘이 노래졌다. 출산 전날까지 출근하고 30일 만에 출근했다. 법정 휴가는 60일이었지만 그걸 다 채우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누가 키울 것인가. 아이는 시댁과 친정을 오가다 결국 집으로 왔다. 출근 때면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 울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오면 잊었다. 전화라도 하다 남들이 듣고 "결혼한 여자란" 하는 게 싫었다. 어떻게든 일로 승부해야 한다 싶었다. 아이는 저절로 크지 않았다. 급성폐렴에 걸린 아이가 이마에 링거를 맞으며 자지러지게 우는 걸 보거나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내달을 땐 당장 그만둬야지 싶었다.

그러던 중 둘째가 생겼다. 첫아이가 좀 크면 해외연수를 떠나리라던 다짐은 와르르 무너졌다. 입주도우미론 어림도 없어 결국 친정어머니가 오셨고 덕분에 아이들은 잘 자랐다. 나는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며 과외활동을 시키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이 아이를 온종일 이 학원 저 학원에 데리고 다닌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키워서 무슨 창의력이 생기겠느냐며 큰소리쳤다.

하지만 그건 물정 모른 자만에 불과했다. 공교육 수준은 과거와 달랐고 같은 문제를 얼마나 많이 풀어봤나로 결정되는 입시에서 학습지와 과외를 무시한 아이들의 경쟁력은 떨어졌다. 대학에 떨어진 아들을 보며 어쩌자고 사교육을 무시했나,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아이를 버려뒀을까라는 자책감에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래도 한두 문제 차이로 SKY 입학에 실패한 아이들을 보면서 서울에 있는 대학은 다 서울대란 말을 실감했고,SKY는 아니되 착하고 의리 있는 아들의 친구들을 보면서 간판보다 소중한 게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다.

자식은 족쇄요 굴레다. 키우자면 허리도 휘어지고 등골도 빠진다. 대학생인 아들이 든든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까지 헤쳐가야 할 일들이 많은 걸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안 온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내가 배운 것,얻은 기쁨과 보람은 도저히 말로 다할 수 없다.

참고 양보하고 누군가 미워하다가도 곧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일이냐 양육이냐.둘 다 하려면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물론 낳고 키우노라면 자랑스럽고 뿌듯할 때보다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그렇더라도 지레 겁 먹거나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생각에 미루거나 포기하면 내 분신 덕에 얻는 무한한 세계를 놓친다.

단 여성들이 이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용기를 갖게 하자면 직장에서 임신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않도록,야근과 회식을 줄이도록,아이 엄마라는 이유로 당연히 줘야 할 기회를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을 늘려주는 건 그 뒤다. 이런 배려 없이 출산장려금이나 임신부용 20만원짜리 전자바우처(이용권)를 주는 건 아까운 세금 낭비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