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 경색이 장기화하면서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의 자금난도 심해지고 있다. 미국 증권사인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대기업들이 은행 자금 차입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신규 대출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기업 자금사정 실사지수(BSI)는 지난 10월 75로 떨어져 2003년 1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체 은행권의 대기업 대출 증가액도 9월 3조2000억원에서 10월 5조원으로 늘어났다.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발행 여건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무보증 3년 만기 회사채(AA-) 금리는 9월 말 7.76%에서 이달 14일에는 8.83%까지 1.07%포인트나 치솟았고 91물 CP 금리도 9월 말 6.67%에서 이달 4일 7.39%까지 급등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자금 조달처를 은행으로 바꾸고 일종의 마이너스 대출인 한도성 대출을 크게 늘렸다. 당장 자금이 필요하지 않은 대기업조차 한도성 대출을 받아 예금에 넣어두는 방식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최근 시중은행이 대출을 줄이기 시작하면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리는 대기업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소기업보다는 크면서 주요 대기업 계열사는 아닌 중견기업들은 정부와 은행의 지원 대상에서도 빠져 있어 앞으로 이들의 부도가 급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