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풍경 안주삼아 전통주에 취하다

늦가을과 겨울의 문턱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가. 고환율과 경제위기의 한파에 외국으로 나가기가 부담스럽다면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갈대 무성한 들녘서부터 아직도 푸른빛을 간직한 남쪽 마을까지 매력적인 여행지가 곳곳에 숨어있다. 낯선 곳에서 풍경을 안주삼아 마시는 술 한 잔은 여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지방마다 대표하는 전통술이 있는 만큼 그 역사를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국관광공사가 '술익는 여행지'를 추천했다.

◆포천 이동막걸리(경기 포천)=포천에 가까워질수록 산세가 험준해진다. 곳곳에 깎아지른 듯한 화강암 절벽도 보인다. 산이 높아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데다 화강암 지반을 거친 맑은 물은 술 빚기에 그만이다. 그 중에서도 이동막걸리는 전국 애주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화현면에 위치한 산사원에서는 막걸리 등 다양한 전통주 만드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누룩을 빚기 전 마음을 정갈히 가다듬는 과정도 있다하니 한잔 술에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진다. 술 익는 내음에 아득한 기분이 든다면 신북면 아트밸리를 찾아보자. 화강암을 캐내고 버려진 폐 석산을 문화예술창작공원으로 바꾸는 과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정상까지 경사가 꽤나 가파르지만 청명한 산바람에 달아올랐던 기분이 차분해진다. 포천시청 (031)538-2067

◆한산 소곡주(충남 서천)=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한다. 향기로운 맛에 반해 한두 잔 들다보면 어느 새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들국화 향을 머금은 단 맛이 "한 잔만 더하라"고 권유하는 듯하다. 어느 술이나 그렇듯 소곡주도 물이 가장 중요한데 건지산 밑에서 나는 약수로 담가야만 제 맛이 난다. 소곡주 무형문화재 우희열씨 비법대로 건지산 약수에 찹쌀과 누룩,국화잎과 부정을 타지 말라는 의미에서 홍고추 서너개를 넣고 100일간 발효시키면 소곡주가 완성된다. 앉은뱅이가 되어도 좋을 것 같은 유혹을 뒤로 하고 신성리 갈대밭을 거닐어보자. 갈대꽃이 솜털처럼 날리는 가을 풍광도 아름답지만 12월의 그림도 못지않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날아든 수 만 마리 철새떼는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이 장관이다. 서천군청 (041)950-4224

◆완주 송화백일주(전북 완주)=좋은 물과 좋은 재료는 명주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송화백일주 12대 전승자인 벽암스님은 이것들로는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술에 깊은 맛을 더하는 것은 세월이기 때문이다. 송화백일주는 4가지 덕목을 갖춘 수왕사 물로 만든다. '항상 일정 온도를 유지할 것' '바위에서 솟아날 것' 등 조건이 제법 깐깐하다. 술에 송홧가루를 넣는 이유는 송홧가루가 방부제 역할을 해 좋은 효모를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화백일주는 보관할수록 깊은 맛이 나고 기품이 있다. 완주여행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둔산과 모악산 산행이다. 경사가 급하고 선이 굵은 대둔산에서 아버지의 엄격함을 느낀다면 곡선미가 완만한 모악산은 어머니의 포근함을 준다. 완주군 (063)240-4257

◆제주 오메기술(제주 서귀포)=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나. 제주 성읍마을은 일주도로에서 떨어져 있는 탓에 개발 바람을 타지 못했다. 오히려 그 덕에 옛 초가집과 살림살이가 잘 보존돼 국가지정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기에 정해진 관람코스는 없다. '구경하는 집'이라 쓰여진 대문을 열고 들어가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면 된다. 이곳저곳 구경하느라 배가 출출하면 흑돼지수육 한 점에 오메기술을 곁들여보자. 오메기는 '좁쌀로 만든 떡'을 뜻하는데 이것으로 빚은 술이 바로 오메기술이다. 일반 막걸리보다 새콤달콤해 쉬 넘어간다. 날이 추운 겨울에도 최대 15일까지밖에 보관이 되지 않아 오직 제주서만 맛 볼 수 있다. 근처에 멍에승마장이나 거문오름이 있다.

서귀포시청 (064)760-2664김재일 기자/장미향 인턴(한국외대 3년)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