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걱정은 한국으로 쏠렸다. 로렌스 서머스의 통보로 아시아팀이 모였다. 거기엔 테디 트루먼,댄 젤리코,데이비드 립턴,그리고 티모시 가이트너와 마이클 프로먼이 있었다. 가이트너는 대단한 아시아통이었다. 프로먼은 내 비서실장이 되기 전 중동 및 동유럽 경제 개혁을 위해 일했다.

클린턴 정부 재무장관이던 로버트 루빈(70)의 자서전 '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미국'에 담긴 한국의 외환위기 관련 대목이다. 후기엔 이런 부분도 나온다. '스탠리 피셔,마이클 프로먼,티모시 가이트너,피터 오스작 등은 원고의 전부 혹은 일정한 장을 읽고 잘못된 사실과 판단을 고쳐줬다. '

가이트너를 비롯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팀이 괜히 루빈 사단으로 불리는 게 아니란 얘기다. 정통 관료 출신도 아니면서 미국 경제계에 막강한 인맥을 자랑하는 루빈은 과연 누구인가.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유대인이다. 할아버지는 러시아 태생으로 열다섯살 때 미국으로 이민,폴란드 출신인 그의 할머니와 결혼했다.

루빈의 아버지는 컬럼비아대 법대를 나와 괜찮은 집 딸과 결혼했다. 외가가 친가보다 여러모로 형편이 나았던 셈.그러나 그와 여동생은 어린 시절 유색인과 백인을 차별하는 학교에 다녔다. 하버드대 4학년 때까지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이렇다 할 소속감을 갖지 못했다는 고백도 있다.

독서광으로 전공인 경제학 외에 철학에도 빠졌었다는 그는 하버드 졸업 후 런던경제대를 거쳐 예일대 법대 대학원을 나왔다. 변호사 생활은 잠깐,1966년 골드만 삭스에 들어갔다. 90년 스티브 프리드먼과 골드만 삭스 공동의장이 됐고,92년 말 클린턴 팀에 합류했다 99년 월가로 복귀했다.

서머스나 가이트너,프로먼,오스작 등이 아무리 골수 루빈 사단이라도 모든 생각과 정책기조가 루빈과 같진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루빈의 사고와 인맥을 아는 건 곱든 밉든 오바마 경제팀의 속성과 코드를 알아야 하는 우리 경제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될 게 틀림없다. 루빈을 더 연구해야 한다 싶은 까닭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