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ㆍ2위 겨냥…과거 자산매입 방식 탈피
엔고에 보유현금 넉넉…글로벌 산업지도 개편

세계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제위기를 맞아 잔뜩 움츠리고 있는 요즘 유독 일본 기업들은 외국 기업 인수와 투자 등 해외사업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엔고에 넉넉한 현금까지 쥐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세계적인 주가 폭락으로 각국 기업들의 몸값이 싸진 틈을 타서 해외시장 개척 등 글로벌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 산업지도에서 일본 업체들의 영향력은 한층 강력해질 전망이다.

세계 2위 태양전지업체인 샤프는 유럽의 2위 전력회사인 에네르 등과 합작으로 총 1500억엔(약 2조3000억원)을 투자해 이탈리아에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전지 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일본 기업이 해외에 태양전지 공장을 짓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샤프는 친환경제품인 태양전지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투자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화학업체인 미쓰비시레이온은 아크릴수지 세계 1위 업체인 영국의 루사이트인터내셔널을 인수키로 했다. 매수금액은 약 1500억엔(2조3000억원)에 달한다. 미쓰비시레이온은 아크릴수지 부문 세계 4위 업체로,루사이트를 인수하면 2위와의 격차가 훨씬 더 커진 세계 최대 업체로 도약한다.



또 일본 최대 금융그룹인 미쓰비시UFJ가 미국 모건스탠리에 90억달러를 출자해 지분 21%를 확보한 것을 비롯,NTT도코모 이토추상사 등 쟁쟁한 기업들이 앞다퉈 해외기업 인수ㆍ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이토추상사는 중국 가공식품 분야에서 최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딩신(頂新)그룹에 700억엔(약 1조원)을 들여 20%의 지분을 샀고,NTT도코모는 인도 타타그룹 산하 이동통신업체인 타타텔레서비스(TTSL)에 2600억엔을 출자해 26%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의 올 해외 기업 M&A 규모는 사상 최대에 달할 전망이다. 미 금융정보회사인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 중순까지 일본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와 출자는 총 626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7배에 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 기업들의 해외 M&A가 작년 동기 대비 67%,영국 기업은 66% 각각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 기업들은 경기회복기였던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이익이 급증하면서 60조엔이 넘는 현금성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엔고까지 겹쳐 일본 기업들의 해외 기업 인수용 '실탄'은 크게 불어났다. 때문에 일각에선 일본 기업들이 1990년대 거품경제 때 해외 자산 인수에 열을 올리다가 실패했던 전철을 다시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당시와는 모양새가 다르다는 분석이다. 일본 기업의 최근 해외 M&A에는 자금 여유가 많은 종합상사와 내수시장 축소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제약사,식품회사들이 활발히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경쟁력 있는 분야에서 몸집을 키워 세계 1,2위가 되려는 게 주류다. 영국의 한 자산운용 담당자는 "과거 일본은 해외 유명 빌딩과 골프장 등 상징적인 자산을 사들이는 데 열중했다면 지금은 시장 개척이나 수익 창출이란 관점에서 기업을 매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