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IB(투자은행) 도약을 꿈꾸는 증권사들이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시장이 사모펀드(PEF)다. 사모투자전문회사가 정식 명칭인 PEF는 '자본주의의 제왕'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자본시장의 핵심이지만 한국에서는 이제 출범 4년째인 초기시장이다.

PEF는 기업을 포함한 소수의 거액 투자자에게서 모은 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합병(M&A)해 경영에 참여한 뒤 회사가치를 높여 지분을 재매각,고수익을 얻는 펀드다. 외환은행을 인수해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론스타를 생각하면 된다.

한국에서도 요즘 웬만한 M&A에는 PEF가 끼는 경우가 많다. 이달 초 예금보험공사는 예한울저축은행의 우선협상자로 PEF를 선정했고,유진투자증권 인수전에는 한 PEF가 KB금융지주 등 쟁쟁한 회사들과 경쟁했다.



단순 주식매매중개를 벗어나 다양한 수익원을 찾는 증권사들의 발길도 PEF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우리투자증권과 미래에셋은 각각 4개 PEF의 무한책임사원(PEF를 경영하는 주인)을 맡고 있고,대우 대신 NH투자 SK 메리츠 유진투자증권 등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친 올 하반기에도 PEF 참여열기는 이어지고 있다. 조효제 금융감독원 팀장은 "금융시장 위축에도 하반기 들어 PEF에 더 많은 자금이 몰려 놀랄 정도"라며 "실물경기 위축현상이 뚜렷해지며 10여년 만에 국내 기업구조조정시장이 다시 열릴 내년에는 PEF의 역할이 돋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용연 우리투자증권 M&A팀장은 "지금은 주가 급락으로 매수자와 매도자의 의견이 어긋나 PEF들이 펀드 내 자금을 집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년 2분기 이후에는 큰 장이 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은행들마저 유동성 부족으로 보수적인 행보를 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 PEF에 대한 국가경제차원의 역할도 커졌다는 분석이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홍콩 등 해외펀드들이 국내 M&A시장에 서서히 눈길을 돌리는 점을 감안할 때 서둘러 PEF를 키워야 과거 외환위기 때와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PEF에 대한 규제 완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조용연 팀장은 "대기업들이 내부에 쌓아두고 있는 막대한 현금을 구조조정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PEF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PEF를 포함한 대기업 소속 금융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15%까지만 행사토록 제한한 규제를 앞으로 5년 정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