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불황에 싸고 맛 좋으면 됐지 뭘 더 바라요? 쇠고기 좀 배불리 먹기 위해 LA갈비 5만원어치 사갑니다. "

비가 내린 27일 오전 10시 서울 이마트 용산점 지하 1층 식품매장.주부 김한나씨(40)는 미국산 LA갈비를 3㎏이나 쇼핑카트에 실으며 왜 사는지 묻는 기자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20분쯤 지나자 미국산 쇠고기를 사러 온 사람들로 매장은 더욱 북적거렸다. 매장 한쪽에서 취재하다 우연히 30대 초반의 두 주부가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잠시 멍해졌다. "예전에 유모차 끌고 시청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에 간 적 있는데 지금 이렇게 사러 올 줄 몰랐어."(주부 A) "맞아.돼지고기만큼 싸고 맛도 좋은 쇠고기를 누가 마다하겠어."(주부 B) 불과 몇 달 전 '뇌송송 구멍탁' '미친 소' 운운하며 반대시위에 나섰던 사람들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사러나온 것이다.

이들에게 왜 왔는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주부 A씨는 "반대시위에 참가하면서 사실 살 마음이 없었는데 국내 검역체계가 그 어느 나라보다 철저하고 가격도 너무 저렴해 믿고 사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후 1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회원 30여명이 이마트 매장 앞에 몰려와 '광우병 쇠고기 물러나라' '미친소 파는 악덕 대형마트를 폐쇄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불매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에 머쓱해져 한 시간 뒤 자진해산했다. 매장 관계자들은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년 7월 서울의 한 대형마트가 미국산 쇠고기를 먼저 판매하다 오물 투척,기물 파손 등으로 홍역을 치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6월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팔면 사겠느냐는 질문에 90%가 사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달 조사에서도 그 비율은 50%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대형마트마다 미국산 쇠고기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불황엔 장사 없다'는 얘기다. 취재 중 만난 소비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 가격에…"와 "쇠고기니깐…"이었다. 바로 옆 텅빈 한우 매장을 보며 서민들이 무얼 원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하루였다.

장성호 생활경제부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