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뮤지컬들이 연말 관객을 노리고 첫 공연을 올렸다. 첫날 무대에서 객석의 맨 앞줄은 언제나 그렇듯 배우의 팬클럽이나 서포터스들이 메웠다. 제작사들은 단체로 관람권을 사가는 이들의 구매력 때문에 앞좌석을 이들에게 줄 수 있도록 애쓴다. 이들은 배우가 무대 위에 나타나자마자 환호하며 공연장의 분위기를 띄운다.

문제는 열혈팬들이 공연이 끝나자마자 흥겨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생긴다. 일단 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면 뒷사람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뒷좌석으로 '기립 도미노'가 이어진다. 흥겨운 커튼콜 공연을 시작하면 기립을 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도 주변에서 다 일어나는데 혼자만 꿋꿋이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도 어색하다. 예나 지금이나 기립박수가 반드시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감동 때문에 터지는 것은 아니다. 기립박수의 시초는 1743년 영국에서 열린 헨델의 '메시아' 초연 때다.

당시 이 공연을 참관 중이던 국왕 조지 2세가 하이라이트인 '할렐루야' 합창 부분에서 감격에 겨운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자,주변에서 이를 본 귀족들이 할 수 없이 차례로 일어났다. 그 이후부터 '할렐루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립한 채 관람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그래서 제작사들 사이에서 '공연장 분위기와 티켓 판매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환호하고 박수를 치고 그래서 여러 번의 앙코르 무대가 이어질 정도면 매진사례가 나와야 정답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기립박수의 분위기가 좋다고 해도 관객들은 정작 마음속에서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2008년 봄,뉴욕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세인트 제임스 극장은 밤마다 공연이 20~30분씩 늦게 끝났다. 뮤지컬 '집시'의 주연 여배우 패티 루폰이 극중에서 딸에게 배신당한 뒤 솔로곡을 부르는데 여기에 감격한 관객들이 극중인데도 벌떡 일어나 10여분 동안 박수를 쳤기 때문이다. 루폰은 연기하다 말고 박수 치는 관객들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곤 했다.

'집시'는 2008년 브로드웨이의 최고 흥행작으로 떠올랐다. 루폰은 이 작품으로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이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용신 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