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독설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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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현 <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
드라마는 시대의 산물이다.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의 책 '한국인의 자화상,드라마'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도 드라마를 통한 시대 엿보기이다.
한 예로 시청률은 낮지만 '대왕 세종'의 남다른 점을 '권력욕=악,순수한 열정=선'이라는 기존 드라마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정치를 하는 사람이 권력욕을 갖는 것은 당연하므로 권력욕 여부가 아닌 그 '질'과 '원칙'을 문제 삼고 있다는 데서 찾는다. 정치는 고통스러운 행위이지만 그 속에서 인간과 사회는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정치에 대한 원망(怨望)과 원망(願望)을 모두 담고 있는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정치관이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또한 지금 우리가 얼마나 죽비소리 같은 독설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베토벤 바이러스'는 공중파 드라마로서의 기능이 중요하기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제를 전파한다. 유행어가 된 '똥덩어리'들이 음악을 통해 꿈과 희망을 이뤄나가는 감동적 휴먼드라마로서의 면모를 무시할 수 없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소위 '천민'들의 3류 인생도 명품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반동은 대중들이 드라마를 이끌어 나가는 두 주인공 중에서 '젊고 예쁘고 착하고 잘생긴' 건우가 아니라 '늙고 못되고 이기적이고 미운' 건우,즉 강마에에 더 열광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물론 동명이인인 두 사람은 서로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로서 인간의 양면성을 대변한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독설교 교주라고 불릴 정도로 오만하고 냉소적이며 배려심 없는 강마에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강마에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의 말은 맞다. 맞는 말만 하니까 듣는 사람들이 아프다. 그런데 아프면서도 시원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독설 때문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쫓겨날 궁지에 몰린 강마에는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여러분들을 실력 외적인 걸로 부당하게 야단친 적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준비를 잘 못해 와서 여러분들을 헤매게 만든 적 있습니까?"라며 되묻는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해준다. "여러분들을 창피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연주할 음악 앞에,작곡가 앞에,관객 앞에 여러분들이 당당하게 나서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이런 강마에의 말을 되새기다 보니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람 이매뉴얼(Rahm Emanuel)이 떠오른다. '람보,암살자,투견,독사' 등의 별명이 암시하듯이 성격도 까칠하고 욕도 잘하는 이 사람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실력 때문이란다. 탁월한 협상 능력과 선거 자금 모금 능력,언어 구사 능력으로 인한 이익은 그의 독설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도 남는가 보다.
살기가 힘들수록 인간의 마조히즘적 속성은 강해진다. 그래서 난세에 영웅이 출현하기가 더 쉽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착하고 선한 영웅이 아니라 못되고 이기적인 영웅이 인기다. 성군이나 의적이 아닌,실력파 전문인이자 독설가인 영웅 말이다. 실력과 원칙만 있다면 그의 독설도 참아낼 정도로 지금 우리들은 다급하고 절실한 것일까. 구박받고 상처 입어도 더 나아질 수만 있다면 독설도 밀어(蜜語)로 전환시킬 수 있을 만큼 지금의 우리들은 많이 부끄러운 것일까. 그리고 더 이상은 부끄럽지 않고 싶은 것일까. 독설이 오히려 위로가 될 정도로 자극과 반성이 보약인 시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짠하다.
드라마는 시대의 산물이다.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의 책 '한국인의 자화상,드라마'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도 드라마를 통한 시대 엿보기이다.
한 예로 시청률은 낮지만 '대왕 세종'의 남다른 점을 '권력욕=악,순수한 열정=선'이라는 기존 드라마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정치를 하는 사람이 권력욕을 갖는 것은 당연하므로 권력욕 여부가 아닌 그 '질'과 '원칙'을 문제 삼고 있다는 데서 찾는다. 정치는 고통스러운 행위이지만 그 속에서 인간과 사회는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정치에 대한 원망(怨望)과 원망(願望)을 모두 담고 있는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정치관이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또한 지금 우리가 얼마나 죽비소리 같은 독설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베토벤 바이러스'는 공중파 드라마로서의 기능이 중요하기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제를 전파한다. 유행어가 된 '똥덩어리'들이 음악을 통해 꿈과 희망을 이뤄나가는 감동적 휴먼드라마로서의 면모를 무시할 수 없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소위 '천민'들의 3류 인생도 명품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반동은 대중들이 드라마를 이끌어 나가는 두 주인공 중에서 '젊고 예쁘고 착하고 잘생긴' 건우가 아니라 '늙고 못되고 이기적이고 미운' 건우,즉 강마에에 더 열광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물론 동명이인인 두 사람은 서로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로서 인간의 양면성을 대변한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독설교 교주라고 불릴 정도로 오만하고 냉소적이며 배려심 없는 강마에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강마에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의 말은 맞다. 맞는 말만 하니까 듣는 사람들이 아프다. 그런데 아프면서도 시원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독설 때문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쫓겨날 궁지에 몰린 강마에는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여러분들을 실력 외적인 걸로 부당하게 야단친 적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준비를 잘 못해 와서 여러분들을 헤매게 만든 적 있습니까?"라며 되묻는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해준다. "여러분들을 창피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연주할 음악 앞에,작곡가 앞에,관객 앞에 여러분들이 당당하게 나서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이런 강마에의 말을 되새기다 보니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람 이매뉴얼(Rahm Emanuel)이 떠오른다. '람보,암살자,투견,독사' 등의 별명이 암시하듯이 성격도 까칠하고 욕도 잘하는 이 사람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실력 때문이란다. 탁월한 협상 능력과 선거 자금 모금 능력,언어 구사 능력으로 인한 이익은 그의 독설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도 남는가 보다.
살기가 힘들수록 인간의 마조히즘적 속성은 강해진다. 그래서 난세에 영웅이 출현하기가 더 쉽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착하고 선한 영웅이 아니라 못되고 이기적인 영웅이 인기다. 성군이나 의적이 아닌,실력파 전문인이자 독설가인 영웅 말이다. 실력과 원칙만 있다면 그의 독설도 참아낼 정도로 지금 우리들은 다급하고 절실한 것일까. 구박받고 상처 입어도 더 나아질 수만 있다면 독설도 밀어(蜜語)로 전환시킬 수 있을 만큼 지금의 우리들은 많이 부끄러운 것일까. 그리고 더 이상은 부끄럽지 않고 싶은 것일까. 독설이 오히려 위로가 될 정도로 자극과 반성이 보약인 시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