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한국호'는 어느 때보다 힘겨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경기위축 등으로 수출 여건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수출기업들은 그러나 격랑 속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수출 4000억달러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무역규모 8000억달러 돌파도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 10월까지 수출은 작년 동기대비 21.0% 늘어난 3663억달러.원화 약세에서 비롯된 반사이익으로 자동차 등 주력상품이 수출 호조세를 보였고,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투자와 소비 여력이 커진 자원부국이나 개발도상국의 틈새시장을 넓혀간 결과다. 고유가 등으로 수입금액이 늘어 올 10월까지 전체 수입은 31.5% 증가한 3800억달러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전체 무역규모는 7463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6.1% 늘어났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수출 4000억달러,무역규모 8000억달러 돌파가 무난하다고 한국무역협회는 전망했다.

◆1966년 전체 수출,이제는 한 시간만에

수출 4000억달러는 1995년 1000억달러를 넘어선 지 13년 만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1964년 한 해 외국에 수출한 금액이 1억달러였는데 올해는 시간당 1억달러(하루 14시간 수출 기준)어치를 수출한 셈"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1000억달러에서 4000억달러에 도달한 속도는 세계 수출 11강 중 중국에 이어 2위다.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도 수출 4000억달러 돌파에 9년이 걸렸다. 미국 등 세계 수출 10강이 4000억달러 돌파까지 걸릴 기간은 평균 17.2년이다.

올해 수출 증가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발도상국 자원부국 등 틈새시장을 통해 이뤄냈다는 점에서다. 올 10월까지 개도국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7.5% 증가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투자를 늘린 자원부국으로의 수출은 28.3% 증가했다. 무역협회는 "북미 유럽 등 한국 수출기업들의 주력시장이 금융위기로 수요가 급속하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개도국 자원부국 등에 대한 시장 개척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호적이지 않은 수출 여건

수출기업들은 악조건 속에서 선전했음에도 속내가 편치만은 않다.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입 규모가 크게 늘어나 10년 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됐기 때문이다. 올 들어 10월까지 136억원의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무역수지를 흑자로 돌려 놓으려면 대일 무역역조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올 들어 10월까지 대일 무역적자는 290억달러여서 연간 기준 300억달러를 처음 넘어설 것으로 우려된다. 올 9월까지 전체 부품소재 무역수지는 306억달러 흑자인 반면 대일 무역수지는 184억달러 적자였다. 범용 부품소재에선 기술 경쟁력을 갖췄지만 고도기술 부품소재에선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10대 주력 수출품목들의 위상도 급변하고 있다. 국제 메모리 가격 급락으로 지난해 수출 1위였던 반도체는 5위로 떨어졌다. 자동차는 2위에서 4위로,컴퓨터는 7위에서 10위로 내려앉았다. 반면 세계 조선업황 활황에 힘입어 4위였던 선박은 1위에 올랐다. 석유화학제품은 고유가,중국 베이징올림픽 특수,정유사들의 고도화설비 투자 확대 등에 힘입어 5위에서 2위로 도약했다.

이희범 무역협회 회장은 "내년 세계경제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아 '수출 한국호'의 순항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럴 때 일수록 신시장 개척에 눈을 돌리고 강소기업을 육성하는 등 수출 드라이브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