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에선 "어서 오세요"보다도 "이랏샤이마세"나 "환잉광린(歡迎光臨)"이 훨씬 자주 들린다. 일본ㆍ중국 관광객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명동을 'CJ상권'(China+Japan)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까지 있다.

엔화와 위안화 환율은 1년 전보다 거의 두 배로 뛰었다. 화장팩 가격은 작년과 같은 3000원이지만 그들에겐 1500원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지금 한국만한 '쇼핑천국'이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50% 바겐세일'과 같은 환율 효과로 인해 저가화장품 매장에선 제품을 한아름 가득 집어들고 계산대에 길게 줄을 선다. 매장 직원들이 수시로 빈 진열대 채우는 모습은 마치 대목 때 대형마트가 연상된다.

하지만 지난 주말 둘러본 명동의 상점들은 모처럼의 호기를 제대로 못 살리고 있는 것 같다.

한 일본인 관광객은 "화장품 매장을 제외하곤 일어 표시가 없어 물건 사기가 어렵다"며 "엔화를 직접 받는 매장도 거의 없어 더 사고 싶어도 환전하기 불편해 그만둘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일본인 손님이 많은 롯데호텔조차 일어 안내문이 없어 불편하다는 지적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관광객들은 일어ㆍ중국어 표기는커녕 영문 표기조차 없는 매장도 허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ㆍ중국 관광객이 명동으로 몰려들어도 그 수혜자는 극히 일부 화장품 매장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해답은 저가 화장품 매장에서 찾을 수 있다. 더페이스샵ㆍ스킨푸드ㆍ잇츠스킨 등의 매장들은 일어ㆍ중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배치하고 해당 언어로 제품을 표시해놨다. 면세점처럼 '택스 프리'(tax freeㆍ외국인 구입물품의 세금환급 시스템)까지 해준다. 매장에서 엔화를 받는 것이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500엔짜리 엔화 동전을 쓸 때와 이를 원화로 환산한 8000원을 쓸 때 어느 쪽이 더 쉽게 지갑이 열릴지 상상해보면 마냥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은 늘었어도 그들의 씀씀이는 늘지 않는다고 한숨만 지을 게 아니라 당장 몇 가지 작은 배려를 해볼 때다. 명동 입구의 대형 환영 입간판보다 훨씬 실속 있을 것이다. 명동이 언제까지나 고환율의 반사이익을 누릴 순 없으니까.

안상미 기자 생활경제부 saramin@hankyung.com